윤길중 개인전…영담한지미술관 7월30일까지
윤길중 개인전…영담한지미술관 7월30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5.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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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 아닌 본질에 더 다가가고 싶었다”
전국 260여개 사찰 큰법당 찍어
낙산사 소실 후 ‘현재 기록’ 결심
촬영 후 주변부 지우니 ‘초현실’로
간척지에 누워있는 나무서 위안
원하는 사진 얻으려 15년간 분투
늦은 나이 입문이 오히려 큰 동력
윤길중 작 큰법당-쌍계사-논산
윤길중 작 ‘큰법당-쌍계사(논산)’

윤길중의 피사체는 실로 다양하지만 뿌리는 하나다. 석상, 대웅전, 꽃, 나무, 석불 등의 다양한 대상들을 포착해 왔지만, 그 출발에는 부유함과 안락함을 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한다. 부귀영화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석불이나 대웅전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함은 간척지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나무에,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현대사회의 이중성은 생화와 조화가 혼재된 꽃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영담한지미술관 개인전 ‘寺花木石(사화목석 : 바르고, 새로우며, 슬프고, 정겨운)’전에 다채롭지만 날카로운 지성이 묻어난다.

총 7개의 연작을 발표해 왔지만 이번 전시에는 4개의 연작을 걸었다. 쓰러진 나무나 종교적인 상징물, 생화와 조화로 구성된 정물 등의 소재들에 바르고, 새로우며, 슬프고, 정겨움에 해당하는 다채로운 정서들을 담아내고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르다의 정서로 작업한 ‘큰법당’ 연작이다. 경주 기림사, 완주 위봉사, 부안 내소사, 경주 불국사, 논산 쌍계사 등 전국 260여개의 사찰을 방문하고 촬영한 사찰의 큰법당인 대웅전 사진이다. 2005년 강원도 양양의 화재로 낙산사가 소실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찰의 현재를 기록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작업이다.

사찰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소실로 사라지지 않더라도 중수되거나 재견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세월의 역사가 중첩된다. 그가 사찰의 큰법당을 촬영하는 목적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 시점의 역사 기록에 있다. “몇 백년이 지나면 제가 촬영한 사진들이 좋은 사료적 자료가 될 것입니다.”

큰법당을 촬영할 때 역점을 두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다. 세월의 풍파를 오롯이 견디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포착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진이 재현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하는 예술가적 역량을 발현하는데 투지를 불태운다. 그것은 곧 초현실적인 구현으로 드러난다.

그가 촬영한 큰법당은 “촬영 후 큰법당 주변부를 정교하게 지워내는 행위”를 통해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 하늘과 구름을 말끔히 지워내자 날렵한 용머리는 더욱 도드라지고, 처마 밑에 새겨진 현판과 전각을 타고 흐르는 선들의 모습은 흐트러짐 없이 단아해진다. 설상가상 풍경을 잘라낸 여백에 표현된 오묘한 미색은 초현실을 극강으로 끌어올린다.

실존의 대웅전을 초현실적 공간으로 치환하며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종교가 욕망에 대한 염원처로 보지 말고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재인식하자”는 것이다. 실존의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처가 아닌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기 위한 영적 공간으로의 회복을 의미했다. “큰법당은 부귀영화나 무사안일을 위해 기도하는 욕망의 공간이 아닙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수행처죠. 저는 바로 종교의 그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죠.”

윤길중 작 '석불 04'
윤길중 작 '석불 04'

 

석불을 촬영한 ‘Human Desire’ 연작도 종교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을 건드린다. “우리의 선조들은 돌에 새긴 조각을 통해 무엇을 담아내고, 왜 이를 간절한 염원과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이끌린 작업이다. 그는 그동안 전국의 ‘석인’과 ‘석장승’의 미묘한 표정의 차이와 그에 담긴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왔다. 그 연장으로 1,500여년의 시간을 넘어 천진난만하고도 자애로운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의 ‘석불’을 찍었다.

정겨운 정서에 해당하는 ‘Human Desire’ 연작 또한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집중이지만 인간적인 면모에도 의식을 모은다. 석불이 염원과 경외의 대상인 초월적 절대자의 상징이지만 평범하고도 소박한 우리의 표정을 닮은 정겨운 모습에 집중한다. “선조들은 비록 현생의 삶은 고단하지만 언젠가는 구원되기를 염원하는 간절함을 부처의 모습과 표정에 새겨 넣었고, 후손인 우리는 ‘석불’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정겨운 모습을 표현하려 했어요.”

윤길중 작 '기이한 풍경 07'
윤길중 작 '기이한 풍경 07'

 

‘Strange Landscape’ 연작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은유다. 바다를 막아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섬에서 육지로 거듭난 경기도의 형도에서 서식하는 버드나무에서 애잔함을 느끼고 촬영한 작품이다. 형도 갯벌을 복토를 하자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들이 자연스레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됐지만 땅 밑에서 올라오는 염분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자 조금만 큰 바람이 불어도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을 촬영했다.

“간척사업으로 땅은 넓혔다고 좋아했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뿌리를 드러낸 채 몸통을 옆으로 누웠지만 나무들은 죽지 않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 쓰러진 나무를 보며 환경을 인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어요.”

윤길중 작 '기이한 풍경 05'
윤길중 작 '기이한 풍경 05'

‘Strange Landscape’는 그가 갑상선암으로 힘들어 했던 시기에 매진한 작품이다. 당시 그는 쓰러진 나무와 중증장애인을 피사체로 삼았다. 그들의 소외와 그로인한 고통이 자신의 문제처럼 다가왔고, 그들을 찍으면서 많은 위안을 받었다. “늘 경쟁하며 살아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큰 병까지 얻은 시기에 쓰러져 가는 나무를 만났어요. 비록 쓰러졌지만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싹을 틔우는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았죠.” 운명 앞에 의연하리만치 순응하며 생을 이어가는 나무의 겸허한 삶이 그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처럼 다가온 것.

이번 전시에 소개된 ‘Strange Landscape’는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촬영한 작품으로, 7년만의 신작이다. 7년 사이에 새롭게 싹을 틔워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바람에 맥없이 쓰러지는 등 형도 속 나무들의 지형들은 사뭇 달라져 있었지만 삶을 향한 치열한 사투와 생존에 대한 강한 투지는 여전했다. 이전까지는 쓰러진 나무들에서 그가 위안을 받았다면, 이번 작업에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사그라져 가는 상처 입은 나무들에게 그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저의 손길로 나무에 약을 발라주고 싶었어요.”

윤길중 작 'seesaw  rm 15-tulip'
윤길중 작 'seesaw rm 15-tulip'

 

새로움의 정서와 관련된 ‘See Saw’ 연작은 정물화다. 조화와 생화를 화병에 꽂아 그린 작업이다. 화면 속 정물은 무엇이 진짜 꽃이고 가짜 꽃인지 육안으로 식별이 쉽지 않다. 생화와 조화로 만들어진 결혼식장의 축하화환을 보고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고찰하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실물과 인공물, 참과 거짓이 혼재된 우리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표현이다.

“제가 촬영한 사진만으로는 조화와 생화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럴 경우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죠.”

‘Strange Landscape’와 ‘‘See Saw’ 연작에서 새로운 시도가 목도된다. 동일한 사진을 두 장씩 출력해 나무나 꽃의 형상을 씨실과 날실의 형태로 잘라 천을 짜듯 직조했다. 촬영한 이미지를 해체하고 직조해 오브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의도적으로 방해요소를 개입시킨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본다’라는 무의식적인 행위를 ‘새롭게 바라본다’라는 의식적인 행위로 치환하기 위한 매개로 직조를 활용했다.

“중심이 되는 형상에 직조를 하면 익숙하던 것도 특별하게 보게 됩니다. 바로 그 효과를 직조를 통해 누리고자 했어요. 그럼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하고 싶었어요.”

피사체의 줄기는 다양하게 뻗어가고 작업의 출발에 인간의 욕망을 상정하고 있지만 궁극으로 그가 도달하고픈 세계는 본질의 세계다. 그는 의식을 건드리는 대상에서 문제의식을 발동하고, 개념적인 논리를 정연하게 세련화하며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궁극의 본질로 나아가려한다. 특히 한지 등의 한국적인 재료나 석상이나 대웅전 등의 한국적인 소재를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한 정서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심미적인 사진예술를 구현해왔다.

그런 그가 사진에 쏟는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전국을 수없이 누볐고, 누가 봐도 윤길중 작품이라고 인정할 만한 연작들을 7개나 발표했다. 사진 작업 15년이라는 길지 않은 작업 기간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고군분투다. 사업가로 성공하고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사진예술에 뛰어든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비전공자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입술을 깨물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민 세월이 지금의 결실을 만들었다. 치열하게 편견과 맞선 결과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훌쩍 들어와 있었다. “타인의 흔적을 찾아가며 본질로 나아갔던 저의 사진 예술은 제게 치유였어요.” 전시는 7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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