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아궁이
[좋은 시를 찾아서] 아궁이
  • 승인 2023.05.28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연화
안연화 시인

해바라기 닮은 노란 무우차 한잔 들고

며칠 관심 갖지 않은

아궁이 문을 열었다

혼자의 시간 적적했는지 사면이 축축하다

타닥타닥

참나무 한 덩이를 태우고

우그러진 종이컵과

종이컵에 담긴 지나간 시간도 태운다

무심히 독거하다가 뜻밖의 관심은 큰 환희다

새파란 아기 개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도란도란 모여 재잘거리던, 깔깔 넘어가던

물기 마른 아궁이는

참나무 몇 개만으로 뜨거워지고

나, 저보다 더 뜨거워진다

◇안연화= 2006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상 등단. 대구시인협회 이사. 대구문인협회 회원, 서설시 동인. 시집 ‘헐렁한 시간’이 있음.

<해설> 시인은 두 개의 아궁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실존의 아궁이일 것이고, 하나는 심중의 아궁이일 것이다. 오래 불을 지피지 않는 집의 아궁이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서 자신 또한 혼자의 시간, 무심히 독거하게 된 상황을 인식하게 되고, 아마도 아기 개구리들은 시인의 피붙이인 손자들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다녀간 뒤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심정 같은 것이 아궁이를 더 쓸쓸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시인은 지금 누군가로부터 관심이 그리운 것이다. 참나무 장작 몇 개 지피고 덩달아 과거의 흔적인 종이컵까지도 아궁이 속에 던져 넣으면 아궁이보다 먼저 더 많이 뜨거워지겠다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