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조선 명종의 천기
[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조선 명종의 천기
  • 승인 2023.05.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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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명종은 조선의 정식 국왕 중 재위기간이 짧은 2대 정종, 5대 문종, 9대 예종, 13대 인종, 경종과 쫓겨난 임금인 단종, 연산군, 광해군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종묘(宗廟) 정전(正殿) 세실에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지지 못한 왕이다. 정전에는 임금의 신주 19위, 왕후의 신주 30위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명종은 대신 1단계 급이 낮은 영녕전(永寧殿) 동협에 위패가 경종, 추존 왕인 원종, 진종, 장조, 의민황태자 영왕(영친왕),자행황태자비과 함께 있다. 영녕전에는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명종은 22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지만 존재감이 없음을 나타낸다.

명종(1534∼1567)은 1534년(중종 29년) 음5월 22일,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문정왕후가 의혜공주,효순공주,경현공주를 먼저 낳고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왕이 되기 전에는 ''경원대군(慶源大君)이었다.
 

 

명종이 태어난 ①미토(未土, 양)월은 화기인 열기를 복사하여 가장 더운 시기이나 갑목과 을목의 성장이 정지돠어 양기가 음기에 포장되는 상태인 4양2음의 상태이다. ①미토(未土) 미토월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때이자 채소와 참외, 수박등의 과일이 많이 나는 때이고 밀과 보리도 먹는 때인 소서((小署)와 대개 중복(中伏) 때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한 절기인 대서(大暑)를 포함하는 음력 6월에 해당하는 토이다.

미토는 사오미(巳午未) 남방 화국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또한 해수(亥水, 돼지)와 묘목(卯木,토끼)와 해묘미(亥卯未)삼합 목국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갑목과 을목의 성장이 정지되고 저장되는 상태인 묘고지(墓庫支)이다. 미토는 오화와 오미합(午未合)하나 합이불화(合而不化)한다. 즉 다른 오행으로 변하지 않는다.

미토는 각종 작물이나 꽃을 재배하는 정원, 과수원, 밭, 농장, 곡물창고 등에 비유하거나 음식점, 다방, 식품점, 과일, 주류, 장류(된장, 간장,고추장), 연회장, 토건회사, 동물사료, 노래방, 바등의 물상을 나타낸다.

또한 미토는 모든 의류와 복식, 양복점, 포목점, 모자, 드레스, 혼수품등과 레저활동, 술과 과일, 음식, 악세사리, 디자인 ,인테리어, 건축, 발코니등의 의식주에 관한 것을 주관한다. 또한 서고를 나타낸다. 미토는 하늘의 기상을 담고 있는 천간을 저장한 지장간이 정을기(丁乙己)이다.

명종의 사주의 ①미토(未土)는 십성(十星)상 겁재(劫財)에 해당하여 이복형재와 여자형제를 상징한다, 미토의 무자일주는 미토가 하늘의 덕을 받는 천을귀인(天乙貴人)에 해당한다. 명종은 동복형제로 의혜((懿惠公主, 1521~1564),효순(1522∼1538),경현(1530~1584),인순공주(1542∼1545)가 있다. 이복형제는 효혜공주,조선 12대왕 인종과 복성군, 덕흥대원군 등의 8남7녀가 있었다. 인종(1515∼1545)은 을해년 기묘월 계축일 임술시생이다.

명종은 재위가 1545년(명종 즉위년)부터 1567년(명종 22)까지이나 실질적으로 권력은 조선의 측천무후로 불린 모후인 문정왕후(1501~1565)가 좌지우지한 허수아비와 같은 왕이었다. 배우자궁인 일지(日支)의 ③자수(子水)정재는 인순왕후(仁順王后,1532∼1575)로 그녀는 세종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沈溫)의 6대손인 청릉부원군 심강(沈鋼)의 딸이다. 이들 사이에 1551년(명종 6)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낳았으나 1563년(명종 18) 세자가 사망하였다. 순회세자(1551∼1563)는 이 사주에서 ⑤갑목(甲木)편관이나 않은 자리가 사지(死支)인 ④오화(午火)와 묘지(墓支)인 ①미토(未土)라 무력하다.

이후 명종의 이복형인 창빈 안씨의 자녀 덕흥대원군(1530∼1559)의 아들(하원군,하릉군, 하성군)인 3남 하성군이 조선역사상 최초로 후궁의 자손으로 명종의 영자로 입적하여 선조로 등극한다. 이후 서원과 향약으로 힘을 키운 사림(士林)의 시대를 연다. 덕흥대원군은 경인년 경진월 을미일생이다, 명종은 인순왕후 외에 후궁을 6명을 두었으나 자녀는 없다.

명조재위기는 1545년 을사사화와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으로 윤원형,이기 정순붕의 소윤이 윤임의 대윤과 이언적,권벌,유관,유인숙,안명세 등의 사림들을 제거한 정미사화(丁未史禍)로 인하여 사림들이 피해를 입었다. 또한 1555년 을묘왜변과 임꺽정의 난(1559∼1562)으로 내외적으로 혼란했다. 을묘왜변이후 임시 관청이었던 비변사가 정규 관청이 되어 독자적인 합의기관으로 후기는 의정부를 대신하여 최고 권력기관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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