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우렁각시
  • 여인호
  • 승인 2023.05.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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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혼기를 놓친 가난한 총각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 농부는 논밭이 없었으므로 남이 버린 새알 꼽재기만 한 묵정밭(오래 묵혀 거칠어진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 그 날도 떠꺼머리 노총각은 묵정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이 묵정밭을 일궈서 누구랑 먹고살지?”

“나랑 먹고살지 누구랑 먹고살아.”

바람결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다시 중얼거렸다.

“이 묵정밭을 일궈서 누구랑 먹고살지?”

“나랑 먹고살지 누구랑 먹고살아.”

이상하다 싶어 주위를 살펴본 총각은 묵정밭과 논 사리에 있는 풀숲에서 커다란 우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우렁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어쩌고저쩌고하는 옛이야기는 누구나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나쁜 임금을 물리치고 농부는 임금이 되고 우렁이 색시는 왕비가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든, 심술궂은 시어머니 때문에 농부와 함께 파랑새가 되었든 결과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라고 하였던가! 필자는 눈썰미뿐 아니라 음식 솜씨가 꽤 있는 편이다. 아니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맏며느리에 맏딸 역할을 해왔으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필자 또래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수식어는 당연히 붙지 않을까 싶다. 시댁과 친정은 당연하지만 친정 동생네 까지. ‘내가 사서 고생이지. 지는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고 내가 저보다 더 바쁜데 이게 무슨 짓이람!’ 투덜대며 담근 김치랑 밑반찬을 해 갈라치면 “언니야, 언니가 담근 김치가 젤 맛있어. 우리 애들이 언니 김치만 찾잖아.”, “이모 이거 또 해주세요.”, “이모는 최고 요리사.”라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때마다 ‘그래, 내가 너희 식구들 우렁각시다.’하며 얼마나 우쭐댔던가!

그렇던 애물단지(?) 동생네가 교환교수 남편을 따라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버렸다.

처리할 일들이 남아 동생네 아파트에 들렀다. 아직 남아있는 동생네의 온기를 느끼며 영화에서나 봄직한 흰 천 덮인 침대며, 책상이며, 소파, 먼지 들어갈 틈 없이 꼼꼼하게 붙여놓은 비닐 등을 훑어보다 탁자 위에 놓인 제법 여러 장의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어머님께’, ‘엄마, 아빠에게’, ‘사랑하는 언니에게’, ‘내 조카(수능 칠 때 엿 값)’ 등이 적힌 편지봉투에 내 눈길이 머물자 꼼꼼하고 세심한 동생의 손길이 느껴져 못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그렇게 울고 말았다.

빈 집에 그렇게 덩그러니 앉아 울고 있는데 불현듯 무언가가 세차게 머리를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그동안 내가 그네들의 우렁각시가 아니고 그네들이 바로 나의 우렁각시가 아니었던가? 작은 것 하나에도 맛있다며 먹어준 그 예쁜 행동들에 나는 또 얼마나 신바람이 났던가!

2년을 기약하고 갔으니 동생네가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이 걸릴 것이다. 벌써 그립다.

“언니야, 언니가 만든 송편이 간도 맞고 뜸도 잘 들어 맛있잖아. 한 봉지 싸가지고 빨리 엄마 집으로 와. 기다릴게.”

다가올 추석엔 맛나게 빚은 송편 누구랑 나눠 먹지?

지난 5월 15일은 1993년 UN에서 지정한 ‘세계 가정의 날’이다. 우리나라 경우,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더 의미가 있다. 밖에도 5월에는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발명의 날, 바다의 날, 세계 금연의 날이 있다.

오월이 다 가기 전에 소원(疏遠) 했던 부모와 형제, 자녀,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고마운 스승을 찾아뵙고 감사의 맘을 전하는 시간이 되어보기를 바라본다.

그네들이 지금의 나를 우리를 있게 한 진정한 우렁각시가 이니었을까!

강순화<아동문학가·글로벌교육재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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