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서 입이 눈 아래 있는 것은
먼저 보고 나중에 말하라는 거지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것은
두 번은 듣고 나서 말하라는 거지
그 아래로 손과 발이 있는 것은
먼저 보고 들은 후 나중에 움직이라는 거지
몸이 흐르는 길이 아래로 나 있는 것은
본 것도 들은 것도 모두 아래로 흘려보내라는 거지
몸의 구도가 물의 구도를 닮아 흐르고
물의 구도가 몸의 구도를 닮아 흐르는 걸 보면
세상에 뭐 그리 거창한 가르침이 있겠어
우리 몸이 모두 가르쳐 주고 있는 거다
◇박은주= 2012년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 ‘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나는 누구의 바깥에 서 있는 걸까’가 있음.
<해설> 시인협회 주소록에 있는 이름과 연락처를 뒤적여, 시를 보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내 기억 어디에도 없는 시인으로부터 답이 왔다. 지금 어느 깊은 산, 산사에서 수행 중이니, 보름 뒤 시를 보내겠다는 답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배달된 박은주 시인의 시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생각을 오래 물고 늘어지다가 깨달음에서 얻어진 직관이 물씬 묻어난다. 첫 연에서부터 “얼굴에서 입이 눈 아래 있는 것은/ 먼저 보고 나중에 말하라는 거지”라는 진술로 몸을 건드리고 있다. 신체의 또 다른 곳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는 “세상에 뭐 그리 거창한 가르침이 있겠어/ 우리 몸이 모두 가르쳐 주고 있는 거다”라고, 몸이 곧 우주와 다르지 않음을 독특한 언술을 통해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