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재조명한 대구 출신 전쟁 영웅 유치곤 장군...출격 203회, 韓 공군사 불멸의 기록 남겨
현충일에 재조명한 대구 출신 전쟁 영웅 유치곤 장군...출격 203회, 韓 공군사 불멸의 기록 남겨
  • 박용규
  • 승인 2023.06.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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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승호리 철교 초저공 폭격
북한군 군수 보급로 차단 성공
송림제철소 폭파 등 숱한 작전
전후엔 11전비 등 중요 임무
1965년 만 39세에 과로 순직
달성에 기념관 세워 공로 기려
유치곤
고(故) 유치곤 장군

1952년 1월 6·25전쟁이 한창이던 평양. 인근의 승호리 철교가 폭파됐다는 소식에 어수선해졌다. 당시 승호리 철교는 유엔 공군이 500여 차례 맹공을 퍼부어도 파괴하지 못한 철교였는데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승호리 철교를 폭파한 주역은 유치곤 장군(1927∼1965)이 합류한 한국 공군이었다. 이들은 1천500피트 초저공 폭격으로 이 철교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승호리 철교는 북한군이 중동부 전선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요충지였다. 유치곤 장군은 동료들과 함께 이 작전에 참가해 한국 공군의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과시하게 됐으며, 북한군은 이 철교의 폭파로 보급로가 차단돼 물자 수송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됐다. 이 작전을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이라고 한다.

경북 달성군 유가면 쌍계동(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출신의 고(故) 유치곤 장군은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면서 대한민국 공군 유일 200회 이상이자 최다인 ‘203회’ 출격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수립한 조종사로 남아있다. 1951년 10월부터 1953년 8월까지 비행하면서 남긴 대기록이다.

영화 ‘빨간 마후라’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 장군은 1949년 공군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공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그해 9월 강원도 강릉 제10전투비행단에 배속됐다. 그가 최다 출격 기록을 남기고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등 숱한 전투에 출전한 것은 이때부터다. 유치곤 장군은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외에도 평양 대폭격 작전, 강원도 고성 351고지 탈환 작전, 송림제철소 폭파 작전 등 공군의 주요 작전에 참여해 맹위를 떨쳤다. 이중 평양 대폭격 작전은 1952년 지상 전선이 고착화되고 휴전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을 때 유엔 공군이 북한 내 주요 군사 목표를 파괴하기 위해 전개한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다.

유 장군은 휴전 이후에도 제1훈련비행단, 제10전투비행단, 제11전투비행단 등에서 중요한 임무를 연이어 맡다가 1965년 1월 과로로 인해 만 39세를 일기로 순직했다. 전쟁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을 받았으며, 공군의 전력 증강 및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는 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이 세워졌으며, 유가읍의 휴양림길 중 일부에는 ‘유치곤길’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박용규기자 pkdrgn@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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