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틔운다, 하얗게
꽃은 밥의 시작이다
논둑에 앉아 함박웃음 지으면
수많은 초록이
아버지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벼꽃을 피웠다
한여름 태양이
후두둑 떨어지던 날
하얀 두루마기 차려입고
논둑길 지나
저 산 너머로 떠나시더니
장례식장 식탁 모서리에
굳어버린 밥알로
아버지의 한 생이
내 귀에서 달그락거리네
◇김옥경= 대구 출생. 2013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벽에 걸린 여자’, ‘바다의 전설’.
<해설> 밥-꽃-흰 두루마기(옷)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놀랍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청각적으로 바꾸어놓는 공감각적 알레고리 또한 놀랍다. 시란 이처럼 직관을 오감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겨놓고 독자에게 여백을 남겨주는 것이다. “눈을 틔운다, 하얗게 / 꽃은 밥의 시작이다”라고, 첫 행에서 제시한 직관은 아버지의 생애를 잔잔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논둑은 아버지의 쉼터 또는 일터일 테지만, 산 너머로 가는 길로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런 한 생의 길은 지금 장례식장 슬픔이 꾸덕꾸덕 말라붙고 있는 식탁 모서리 그곳에서 소리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