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의 생성원리 ‘태극조화’
달구벌 도읍 생성에도 원리 적용
天元을 양분했던 신천의 물길
하늘이 그은 ‘음양구획선’ 여겨
최근 호주 부럽반도 원주민마을서
고조선 시대 태극 문양 벽화 발견
고조선 망국 유랑민이 해안 타고
印尼 거쳐 1천명 이상 정착 추정
◇태극(太極)의 음양구획선(陰陽區劃線), 신천(新川)
한반도 특히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은 매일 같이 먹고 있었던 콩(太種)과 같은 씨앗이나 새들의 알(鳥卵)에서도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단순한 지구촌의 생명체에서 벗어나 우주세계 별들의 생성원리(極星原理)까지에도 적용했다.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한 마디로 태극조화에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세포생물학에선 생명체의 난할(卵割, cleavage, らんかつ )처럼 세포분열(각종 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법고창신 혹은 일일신(日日新)이라고 생각했다. 땅의 지각변동, 침식작용에도, 심지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都邑)’의 생성과 변천 과정에도 원용했다.
그래서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은 달구벌 도읍생성을 이해하는데도 태극원리를 이용했다. 즉 팔공산, 비슬산은 외곽을 둘려 싸고(四周山抱), 여기에다 금호강물이 더욱 선명하게 동그라미(天元, 혹은 天圓)를 만들었다. 이를 금호강 혹은 신천강물이 2개 혹은 3개로 분할하는 것으로 봤다. 마치 콩알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둘로 갈라져 떡잎으로 생장하듯 주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둘(혹은 3개)로 갈라진다(有太極,是生兩儀).”고 적고 있다.
이같이 천원을 음양으로 양분(혹은 삼분)했던 신천의 물길을 “하늘이 그어놓은 음양구획선(天劃陰陽線)”으로 생각했다. 신천수로(新川水路)는 자연력 혹은 인력으로 인해 몇 차례 조금씩 변천했다. 고인돌이 배치된 신천수변 석묘군집을 기준으로 할 때 청동기시대의 수로는 오늘날 태극기의 태극을 많이 닮았다. 달리 말하면 신천은 음양을 양분하는 구획선 역할을 하는 간천(間川, 샛강)이었다.
옛날 선인들은 동적인 변화(陽)와 정적인 변화(陰)로 양분해서 음양조화를 생각했다. 본래(태초)엔 양극으로 갈라지는 변혁이 없었으나(無極而太極也. 不雜乎陰陽而爲言耳) 흙과 물, 불(화산 혹은 지진) 등의 무생명체와 식물, 동물 및 사람의 생명체 등으로 작은 동적인 변화를 통해 큰 변혁이 온다고 믿었다. 이렇게 동적 변화의 연결고리는 서로 연쇄작용을 통해서 무한하게 계절, 지형, 민심, 생명체의 생존까지 변동시켰다. 하늘의 역할(天道)은 남성, 땅의 역할(地道)은 여성으로 역할분담했다. 남녀가 하나로 되는 것을 태극으로 봤다. 이것이 바로 남송 때 장식(張拭, 1133~ 1180)이 주희의 태극을 그림으로 해설한 ‘태극해의(太極解義)’의 요지였다.
이와 같은 우주생성의 원리를 청동기시대부터 국가건설에 적용했다. 제정일치시대때는 각종 제사에 사용했던 ‘세 발 향로’ 혹은 완강하게 서로 버티고 있는 ‘삼국정립’을 보고, 3개의 분권조화처럼 삼태극을 구상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태극선의 태극문양처럼 우주생성의 삼재인 천지인을 핵심으로 봤다. 달구벌의 중심을 천원에 놓고 금호강, 신천이 삼태극을 그리면서 흘러 가고 있는 모습에 모두가 감탄했다. 영남유림의 낙중학파 혹은 한려학파의 태두이신 여헌 장현광(張顯光, 1554~ 1637)’의 문집 ‘여헌선생전서(旅軒先生全書)’에서 “오늘 달구벌의 삼태극(宇宙)이 생성되기 이전에도 이미 무한히 지난 과거에도 이렇게 생성되었을 것이고(設令此宇宙之前, 績有已過之宇宙), 이후에도 또다시 무궁하게 우주가 지속적으로 생성된다는 것이다(此理之爲太極, 則其亦一而已矣).” 이어서 그는 “대체로 변화란 즉 삼라만상은 수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만사와 만물을 총칭한다(夫易, 卽天地也. 天地焉而萬變萬化萬事萬物).” 고 개념을 정리했다.
◇신천창신의 태극문양이 지구촌으로
한민족 혹은 동이족의 우주관이었던 삼태극을 한반도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큰 과오를 범한다. 고대 로마용병집단 가운데 켈트족 병정들은 삼태극 문양을 새긴 갑주, 마갑(馬甲), 방패 혹은 깃발을 사용했다. 로마 시대 건축물에서도 삼태극 문양이 사용되었고, 최근에 연구되고 있는 스와스티카(Swastika 卍)와 트리스켈리온(Triskelion)을 비롯하여 일본의 류큐(오키나와)의 미즈도모에(三つ巴) 문양이 삼태극에 연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소용돌이 문양, 삼태극 문양, 혹은 토모에(トモエ, grand order)의 일종으로 가몬(家紋, かもん)에도 자주 이용되었다. 시계방향(clockwise)으로 회전하는 히다리미츠도모에(左三つ巴)와 시계반대방향(countercloackwise)으로 회전하는 미기미츠도모에(右三つ巴)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신천삼태극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출토물로는 618년 백제 무왕의 유적에서 태극문양, 682년 신문왕 때 감은사에서 태극문양, 미추왕릉의 계림도검 등에도 삼태극 문양은 물론이고,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에서 마한의 기원전 1세기경의 바람개비(風車, pinwheel) 문양들이 단서가 되고 있다.
최근 호주 부럽반도(Burrup Peninsula)에 지정된 무루주가국립공원에 있는 어브리진(Aborigin) 원주민지역 무루주가 마을의 암각벽화(stone-engraving picture)에서 고조선 시대의 태극(회오리) 문양의 벽화, 항아리에 불교만자(卍字)의 부조들이 나오고 있고, 동심원(無極 혹은 皇極)이 문양까지 있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 망국의 유랑민들이 해안을 타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이곳에 1천여 명 이상이 정착했다는 단서로 항아리에 새겨진 태극문양을 보고 있다. 남미지역에선 2022년 쿠바 디아스 카넬 대통령이 2020년 한국의 백신 지원에 감사 표시로 지폐에 태극문양을 도안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주(Estado de Sao Paulo)에서 태극을 주기(洲旗)에 넣었다. 심지어 아프리카 보츠와나 특수부대의 군기에도 태극마크가 들어갔다.
달구벌은 지형 자체로 금호강과 신천은 삼태극을 밑그림으로 하고 수많은 변경을 거듭해왔다. 이와 같은 음양태극의 변천을 수식으로 표기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했다. 1987년 설립인가가 나왔고, 1988년에 개교했던 수성구 황금동에 소재했던 대구과학고등학교 장난꾸러기 학생들이 신천의 물길로 그어지는 음양태극의 모양을 방정식으로 표시하고자 모임을 가졌다. “신천태극문양의 수리해(數理解)”는 X2+ Y2 =(2R)2, Y = root{ R2 -(Y-R)2} , Y = - root {R2 -(X+R)2}, 원 반쪽은 x를 경계로 쪼개서 x 축 방향으로 ±R 만큼 병행이동시킨 외접원의 점 y =- 2/3x를 지나고, 방정식 2개가 tan -1(- 2/3) 만큼 회전시키면 그려진다고 봤다.
수리해를 말하는 김에 오늘날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마크를 방정식으로 표시하면 2x+3y=root[-{3x -3y}{3x-2y-2root(13)R}], 2x+3y=-root[-{3x-2y}{3x-2y+ 2root(13)R} ]로 수식을 표시할 수 있다. 이런 태극문양의 원형은 신천수변 혹은 금호강 물섶에 운집했던 고인돌에 선인들이 표시했던 동심원, 혹은 별자리 동그라미(星座) 혹은 움푹 파놓은 홈(性穴, cup-mark)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청동기 당시에선인들은 풍요 혹은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그러나 나말여초 10세기 이전엔 고천문학(古天文學)에 의해 의미를 해석했고, 10세기 이후는 풍수지리에 의해 각종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해 왔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화원 천내리 화장사(華藏寺) 후원의 칠성바위, 진천동 선사공원의 3개의 암각화 동심원들은 무극(無極) 혹은 황극(皇極)으로 볼 수 있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