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 (下) 정부 차원 ‘인파 사고 행동 요령’ 아직도 마련 안돼
이태원 참사 1주기 (下) 정부 차원 ‘인파 사고 행동 요령’ 아직도 마련 안돼
  • 박용규
  • 승인 2023.10.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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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책임진 사람 한명도 없어
축제를 없애는 건 해결책 아냐
현장 직접 보고 대책 만들어야
밀집 장소에 컨트롤 타워 필요”
국가 안전시스템 종합 대책
서울 등 일부 지역에만 정착
특별법은 아직도 국회 계류
트라우마 회복 적극 지원을
“예전에는 행사장에 발 디딜 틈 없어도 ‘사람 많네’하고 그냥 넘겼죠. 이제는 가는 곳마다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1년. ‘압사 사고’에 대한 시민 인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사고 예방법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과다 밀집 공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정부와 각 지자체도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들로 실효성 있는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멈춰 선 유족들,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제자리에

“우리 식구가 전부 12㎏ 이상씩 빠졌어요. 음식을 먹어도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에요. 모든 생활이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년 동안 멈춰있는 거죠.”

아들 홍의성(사고 당시 31)씨를 이태원 참사로 잃은 홍두표(경북 안동)씨는 사고 이후 지난 1년을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홍 씨는 “아들을 생각하고 수목장에 가고 또 서울을 다니고 하면서 1년이 지났다”며 “당시 형과 사고 현장에 있었던 쌍둥이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다. 매일 잠에 드는 것도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어렵게 말을 이었다.

지난 1년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은 홍 씨의 마음에 상처를 더했다. 그는 “일 때문에 이태원을 찾았던 쌍둥이 아들이 갑작스럽게 인파 속에 밀려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이었다”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다는 대한민국에서, 거기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압사로 죽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안 가면 되지, 왜 갔느냐’라고 이야기를 하는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참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도 1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안전망은 여전히 낙제점이다. 홍씨는 안전불감증을 대하는 정부의 문제의식과 안전 대책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결국 사고에 책임지는 사람은 언제고 단 한 사람도 없다. 사고 이후 안전대책도 완전히 제로”라면서 “이후에도 오성 (지하차도) 등에서 여러 사고가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로 (핼러윈) 축제 자체를 없앤다고만 하는데 이런 건 대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비한 걸 만들고 고치고 하는 것이 진정한 ‘대책’”이라며 “밀집 현장에는 교통 관련 부처 등 교통 흐름과 안전 문제에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찰, 소방 등도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대책을 만드는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참사 후 정부, 대책 마련에 초점 맞췄지만…

이태원 참사 후 정부는 대형 인명 피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각 분야의 안전 대책 마련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추진 속도가 너무 더디다거나 일부 지역에 국한돼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 3월 오는 2027년 완료를 목표로 하는 5대 전략, 65개 세부과제의 ‘범정부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첨단 IT 기술을 접목한 ‘현장인파관리시스템’ 구축 △주최자가 없는 축제·행사도 해당 지자체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사전 관리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구시도 올 4월 ‘대구광역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하루 예상 운집 인원이 3∼5만명 이상일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은 대부분이 아직 서울 등 일부에만 국한돼 있어 다른 지역에서의 정착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 지자체 차원의 국민 행동 요령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부대책의 추진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8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부대책 조치 완료율이 약 9%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책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의 제정도 지지부진해 사실관계 규명, 피해자 권리 구제 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올 6월 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구시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안전 관리 조치를 최대한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종합대책의 경우 대구를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도 아직까지는 시행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운영한 후 관련 예산 편성 등을 거쳐 각 지역으로도 방침이 내려올 듯하다”고 말했다.



◇과잉 밀집 둔감증, 압사 사고 대처, 정신적 트라우마 해소 관심 키워야

압사·질식 사고 시 대처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사고 예방법을 담은 영상들 중 일부는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 조회수 1천만건을 넘기는 등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이 게시한 ‘군중 밀집 지역 안전사고 예방교육’ 영상도 이달 기준 조회수 1만7천건을 기록했다. 영상은 ㄷ(디귿) 자세, 권투 자세 등을 통해 압사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자세와 안전사고 예방법 등을 담았다.

사고 발생 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RICH 접근법’을 활용한 정신 상담법과 전문 상담사를 대동한 대면 또는 화상 면담 등의 시스템을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RICH 접근법은 Respect(존중), Information(정보 제공), Connectedness(유대감 형성), Hope(희망 전달)의 합성어다.

경북대학교병원 정운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CPR을 수행한 구급대와 의료진, 경찰, 소방, 공무원,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 등 많은 분들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할 수 있다. 이 분들을 선별해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같은 고통을 겪는 분들이 모여서 (정신 전문 상담사가 있는 곳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호 간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과잉 밀집 둔감증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직장인 김상태(27·대구 동구)씨는 “이전에는 행사에 사람이 몰린다 해도 ‘인기 많구나’하고 말았지, 무서운 사고가 발생하리라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예전 같았으면 쉽게 갔을 행사나 관광지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갑자기 몰려들지 않을지를 걱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용규·김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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