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하 개인전…021 갤러리
류재하 개인전…021 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23.11.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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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기술 융합 통해 예전과 다른 생동감 불어넣기
첨성대 등에 미디어 파사드 ‘주목’
소양강 허공에 영상 투사 성공
안주보다 개척자로 살고 싶어
신작 솥뚜껑에 LED 디스플레이
벽면에 작업과정·얼굴 등 상영도
전시 작품도 작업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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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 작가가 021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눈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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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학 작 ‘눈치’

“예술은 기술을 양식으로 한다”는 명제는 많은 부분 진실이다. 과거 전통적인 재료였던 종이나 캔버스, 물감, 붓 등의 재료들도 낮은 수준이지만 기술과 함께 진화했고, 더불어 미술도 세련화 돼 갔다. 21세기 들어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현대미술과 기술의 관계는 더욱 밀착됐다. 기술이 미술의 전통 형식으로부터의 탈피를 가능하게 했고, 현대미술은 엄청난 형식적인 분열을 감행할 수 있었다. 기술이 미술에 예전과 다른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근에 021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꾸린 류재하의 작업 여정을 따라가면 기술과 미술의 융합에 한계가 없음을 목도한다. 021 갤러리 개인전은 내년 1월 25일까지며, 12월 초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릴 30년 전통의 ‘Art Miami 2023 Edition’에서도 그의 작업은 집중적으로 선보이게 된다.

그에게 기술은 미술의 형식과 개념을 확장하는 지렛대로 활용된다. 특히 미술에 다양한 첨단 기술을 누구보다 앞서 도입하려 했던 행보들이 성과로 꼽힌다. 그가 최초로 시도한 것들에는 모두 기술의 개입과 연관됐다. 그는 동시대의 첨단 기술을 미술에 접목하며 최초라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움직이는 그림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시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국내에서 디지털 미디어 아트가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구현됐다.

움직이는 그림은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됐다. 직접 줄거리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2010년에 시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문화유산과 기술의 융합도 누구보다 앞섰다. 첨성대와 덕수궁 중화전 그리고 광화문에 미디어 파사드를 구현해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전통 건축물과 최첨단 미디어 파사드의 결합이라는 화제성과 작품의 완성도가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괄목할 만한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좌우 기둥만 놓여 진 허공에 영상 투사를 성공시켰다. 강원도 춘천 소양강의 하중도에서 생태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삶의 공간과 예술 공간의 결합을 구현해 낸 것. 무한 공간을 향한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발상의 전환에 의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의 만남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낙동강이 아닌 왜 소양강이었냐?”는 질문에 그가 “낙동강에서 멋지게 성공하고 싶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렵다고 해서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문적인 기술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미술과 접목하고 싶어도 마음만으로 결행하기는 쉽지 않다. 기술을 습득하거나 기술자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어떤 시도는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성공 여부가 미지수여서 뜻만으로 선뜻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아이디어만 번뜩이면 돈키호테가 된다. 앞뒤 전후 맥락을 따지기도 전에 시도부터 하고 본다.

최초 개발자보다 후발주자가 빛을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의 여정도 그랬다. 어떤 작업들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시도들은 묻혔다. 그의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구현을 위한 노력들은 처연하고 집요했고, 마침내 성공했지만 국내 미술계의 분위기로서는 그의 성과들은 너무 빨랐다. 미술계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던 것.

지속적으로 한 분야만 파고들었다면 그도 꽤나 유명세를 탔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한 곳에 안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전자적인 기질을 타고난 탓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재료를 보면 미술적인 완성도로 세워놓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결국 그는 실행하고 만다. 하지만 시류보다 너무 빨라 늘 외롭고 고독했다.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것은 너무 많다. 새로운 기술이나 소재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내일 또 새로운 소재가 나오면 작업도 변할지 모른다”는 그의 말에서 안주하기보다 개척자로 살고자 하는 그의 기질이 읽혔다.

디지털 기술이든, 아날로그 기술이든, 습득하기 위해선 스스로 기술자가 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는 많은 부분 도전해 습득하는 것을 선호한다.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지만 그는 디지털 환경에 주눅 들지 않았다. 목표가 있기에 배우고 터득하는 것은 그에게 늘 즐거움이었다. 움직임을 구현하는 디지털 프로그램이나 미디어 파사드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의 경우도 문외한이었지만 결국 그것을 이용한 작업들을 성공시켰다.

디지털 선두주자처럼 여겨지는 그 이지만 막상 그는 “기술이랄 것도 없다”고 겸양의 뜻을 비쳤다. “‘눈치’에서 구현한 움직임은 철공소 수준이면 다 할 수 있고, 디지털 프로그램도 공부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말처럼 도전하면 능히 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목표에 대한 절박함의 문제였다.

이번 전시에도 미술과 기술의 융합은 어김없이 목도된다. 톱니바퀴와 맞물려 있는 대형 솥뚜껑 여덟 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형 작품 ‘눈치(Mind others)’다. 선조들이 사용했던 가마솥의 솥뚜껑을 오브제로 활용하고 솥뚜껑의 손잡이 부분을 잘래내고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한 신작이다. LED 화면에는 숫자가 투사되고, 분절된 솥뚜껑엔 움직임이 있는 키네틱 요소가 추가돼 있다. 톱니바퀴가 돌때마다 화면 속 숫자가 변화한다.

솥뚜껑과 미디어의 결합은 2003년부터 진행했다. “솥뚜껑의 기하학적인 모양이 좋았고, 과거와 초현대의 만남으로 작품화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의 작업에서 움직임은 강화되는 추세다. 초기 솥뚜껑 작업에선 정적인 정지 상태였다. 이후 움직임과 정지라는 동과 정의 대배를 거쳐 이번 작품에서 동적인 움직임을 강화했다.

작품 ‘눈치’에는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다층적인 개념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재료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결과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궤적 속에서 맞물려 돌아간다. “분할된 솥뚜껑으로 구성된 ‘눈치’는 분해, 결합되는 동적 요소로 구현됐어요.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무빙 오브제의 파편을 통한 사물의 결합은 기존 표현의 경계선에서 이해되는 정확한 용어로 표현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극단적인 대비라는 지점에서 그가 “극단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옛날 물건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엽전을 모았어요. 엽전 중에서도 별전을 모았죠. 지금으로 치면 기념주화였어요. 어린 학생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죠. 옛날하고 현재하고 섞는 극단적인 태도는 그때부터 시작됐죠.”

이번 전시에는 LED 모니터를 설치한 솥뚜껑을 3개를 허공에 매단 또 다른 ‘눈치’ 연작과 사각 틀을 이어 놓은 벽면에 하중도 작업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나 얼굴 또는 물고기 형상이 상영되는 작품 ‘수면 위의 얼굴’도 소개되고 있다.

‘눈치’라는 작품 제목에서 웃음이 터진다. 전시 제목도 ‘눈치’다. 무슨 사연으로 눈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붙였을까? 그가 “눈치 보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인간의 삶이 눈치의 연속이라는 의미였다. “‘어떻게 하면 작품을 잘 보일까’라는 눈치도 보고, ‘이제 돈이 떨어지고 나니까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데’라는 눈치도 봅니다. 인간관계나 우리 삶 자체가 눈치 보는 것 아닌가 싶어 제목을 ‘눈치’라고 붙였어요.” 그는 현재 경북대에 재직 중이다.

이번 전시에선 전시의 틀도 깬다. 전시된 작품들이 계속해서 변화한다. 작가가 전시 기간 동안 새롭게 작업을 추가하거나, 형식을 바꾸거나, 작품 중 일부를 뺄 수 있다. 전시가 종료될 때까지 작업이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전시라고 하면 작품 전시가 완결된 상태를 말하는데, 그럴 경우 이리저리 눈치 보며 끌려 다니기 마련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실험적이고 싶었고, 이번 전시 자체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려 했어요.”

첨단 디지털 기술이 낯선 세대일 법도 한데, 그의 의식은 늘 늘 첨단 기술에 열려 있다. 그가 “어차피 작품이라는 것도 사회 속에서 나온 파생품”이라고 운을 땠다. “동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기보다 앞서가려는 무의식적 의지가 디지털 기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요.” 디지털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디지털은 오늘 잘못 돼도 내일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오늘 잘못되면 버리고 다시 해야 하죠. 그 차이입니다.”

디지털에 호의적이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예술가의 역할로 연결된다. 동시대의 흐름에 안테나의 촉을 예민하게 세우고, 적극 동참하며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동시대 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자신의 틀부터 깨려 한다. “예술과 기술이 일으키는 파동 그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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