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폭설로 오십시오
<좋은시를 찾아서> 폭설로 오십시오
  • 승인 2009.02.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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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경 주

소리 없이 오십시오
나의 기쁜 초대로 오십시오
한 며칠 고립되게
폭설로 오십시오

감금된 자유
정지된 풍경 속에서
나를 가두었던 나와 대면하고 싶습니다

나뭇가지 부러지고 찢기어
허연 속살 드러내어 울부짖는 소리에
짓누른 눈을 털며 산을 헤매고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어린 고라니를 만나
한 며칠 데리고
법 나눠 먹다 보내볼까 합니다

사람이 그립고 세상이 조금 궁금해지면
고립을 풀으셔도 좋겠습니다

기별 없이 오십시오
나의 사랑으로 오십시오
한 며칠 고립되게
폭설로 오십시오.

▷『문학시대』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하서문학회 부실장. 현 강원 평창군 용평에서 창작 활동.
라경주의 `폭설로 오십시오’는 시의 함축성과 그에 따른 간결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눈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온다. 특히 세상을 온통 희게 묻어버리는 폭설도 소리 없이 찾아온다. 그런 폭설 속에는 `정지된 풍경 속’과 함께 역설적인 `감금된 자유’를 누리는 시인만의 체험이 담겨져 있다.

폭설은 기존의 통로를 차단해 사람은 물론 고라니 같은 산짐승도 고립되기 마련이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통로가 차단된 고립 속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되찾는 계기를 갖게 되는 점이다. `나를 가두었던 나와 대면’하는 계기가 폭설의 고립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시적 기교가 돋보이는 시편이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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