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천명 증원’에 양보 없어
안철수·유승민 “규모 재검토를”
의협은 대정부 비판 수위 높여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이 넘었지만 의정(醫政)간 대화체 구성은 멀어 보이고 정부와 여당은 증원 규모와 방식을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의사들도 통일된 목소리를 낼 대화 창구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31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에 대한 ‘유연한 처리’를 모색하도록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했다. 또 정부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을 만난 뒤 의료계와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천명 증원’이라는 핵심 의제에 대해 양측의 입장 차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의제가 마련되지도, 대화할 협의체도 구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2천명 증원’을 양보할 생각이 없음에도 의료계를 상대로 서둘러 대화를 언급했다가 ‘말로만 대화’가 돼버린 꼴이 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장에서 물건값 깎듯이 흥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고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5천만 국민을 뒤로하고 특정 직역에 굴복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에서도 ‘2천명 증원’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특히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증원 규모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도 “2천명 숫자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 눈에 오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고 권영세 의원도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좀 필요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의사들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비대위가 정부의 대화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 또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강경파 인사가 차기 회장에 당선돼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임현택 당선자는 26일 “면허정지나 민·형사 소송 등 전공의·의대생·교수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대화 조건과 관련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파면, 의대 증원에 관여한 안상훈 전 사회수석 공천 취소, 대통령 사과가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사들이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서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함께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최근 “의료계와 정부는 정말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돼서야 이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이냐”며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돼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고 개탄했다.
윤정기자 yj@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