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맨발 구두에게
[좋은 시를 찾아서] 맨발 구두에게
  • 승인 2024.04.1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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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나 프로필 사진
한이나 시인

흙먼지 뒤집어쓴 채 닳아 코 깨진 신발장의

구두 한 켤례

차마 마음에서 버리지 못했다

마음속의 다른 길 허공을 걷는 나인 것만 같아서

낡은 구두 한 켤레로 돌아온 골목

녹슨 철문밖에 내놓지 못한다

만 리 밖을 보려 떼어놓던 내 붉은 발자국들

◇한이나= 1994년 ‘ 현대시학’ 발표로 활동시작. 시집 ‘물빛 식탁’, ‘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 ‘유리 자화상’ 등 7권, 시선집 ‘알맞은 그늘이 내가 될 때’가 있음. 서울문예상 대상, 한국시문학상 외.

<해설> 그러니까 코가 깨진 구두는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의 어떤 기록일 것이다. 문학기행을 통해 자주 찾는 문학관 같은 곳에서 만나는 시인의 유품들은 시인은 가고 없지만, 시인의 체취와 영혼을 만나기라도 한 듯 뭉클해질 때가 있다. 시인의 구두도 그렇다. 어느 쓸쓸한 방황의 길에도 함께 했을 분신을 녹슨 철문 밖에 내다 버린다는 것은, 낡은 구두 한 켤레로 돌아온 골목의 기억을 다 버리는 것이니까. 시인은 차마 마음에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소명을 다한 사물을 향한 따듯한 예찬의 미학이 이 시에는 잘 드러나 있으며, 시인의 발을 감싸던 구두에 대한 고마움 즉 구두가, 구두가 아닌 우리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러함을 알려주는 에두름의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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