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묵시록
[좋은 시를 찾아서] 묵시록
  • 승인 2024.04.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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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균 시인

꽃병 끝에 앉아있는 파리와

그 파리를 내리치려고

공책을 들고 있는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날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리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의 속을 알 수 없는

살벌한

한낮

◇신미균=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1996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맨홀과 토마토케첩’, ‘웃는 나무’, ‘웃기는 짬뽕’,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공저; ‘코로나19 이후의 삶, 그리고 행복’, ‘내가 잠잠하다’, ‘잊지 못할 내 삶의 한 순간’ 이 있으며 한국시문학상, 강동문학상, 시와편견문학상을 수상했다.

<해설> 꽃병과 꽃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 파리를 내리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파리는 알고 있다. 시인이 거머쥔 공책이 빈 공책이 아닌 불경이나 성경을 필사한 공책임도 파리는 알고 있다면 파리는 거듭된 진화를 거친 파리일 것이다. 아무튼 파리와 시인의 심리전은 서로의 속을 꿰뚫어 보려는 데서 시작된다. 어쩌면 애초에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야 했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교감이 시작된 것이니, 눈 감고 내리쳤어야 했다. 살벌한 한낮이라고 시인은 진술하고 있지만 시인은 어느새 파리의 심정을 이해하고 파리 또한 시인의 심중을 꿰뚫고 있다. 꽃병 주위를 날던 파리가 지쳐, 벽이나 천정에 앉아 날개 접고 거친 숨 몰아쉴 바로 그때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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