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혼밥 소송
[좋은 시를 찾아서] 혼밥 소송
  • 승인 2024.04.1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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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순 시인

모름지기 밥은

봄 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를 건너듯

주걱으로 노를 저으며 홋홋이 퍼야 한다

따뜻한 솥밥 한 그릇이면

어두웠던 몸이 환하게 백열전구를 켜는데

전자레인지를 열고 햇반을 꺼내다가

누룽지도 눋지 않는

쓸데없이 그냥 뜨겁기만 한 밥

앗, 뜨거워라

방바닥에 통째로 엎지르고

저것도 나와 마주할 생각이 없구나

손길을 마다하는 야박한 뜨거움에

흩어진 밥알 주워 담다가

목구녕이 어찌하여 포도청인가, 억울한 심사에

골목길 지나는 개라도 붙잡아 놓고

송사를 벌려볼 작심을 해보는 것이다

◇황상순= 1999년 ‘시문학’ 등단. 시집 ‘어름치 사랑’, ‘사과벌레의 여행’, ‘농담’, ‘오래된 약속’, ‘비둘기 경제학’이 있음.

<해설> 밥솥으로 지은 밥이 아닌, 전자레인지를 열고 돌린 햇반을 혼자 먹는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시이다. 밥솥으로 지은 밥을 “봄 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를 건너듯 주걱으로 노를 저으며 홋홋이 퍼야 한다.”는 걸로 보아 현재는 혼밥을 먹지만, 과거에는 어두웠던 몸이 환하게 백열전구를 켜는 솥밥의 맛을 시인은 그리워하고 있다. “누룽지도 눋지 않는/ 쓸데없이 그냥 뜨겁기만 한 밥 /앗, 뜨거워라 /방바닥에 통째로 엎지르고 /저것도 나와 마주할 생각이 없구나”라고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과거를 두고 현재 자신에게 쌓인 불평불만을 가감 없이 쏟아내면서 시인은 골목길 지나는 개라도 붙잡아 놓고 송사를 벌리겠다니? 희망과 절망 두 상황을 비교하면서 꺼내놓은 말, 푸념 섞인 넋두리가 시의 맛을 더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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