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낮달
[좋은 시를 찾아서] 낮달
  • 승인 2024.04.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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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시인

그는 로빙슛으로 날아온 사람이었다

내 머리 위 높고 느리게 선회하던 곡선

비행운처럼 하얀 띠를 두르며

하늘을 내달리다

갑자기 내 머리 위에 멈춰 선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를 뚫고

화살처럼 날아와

언 몸 위에 펼쳐지던 곡선

골키퍼의 숙명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바라보던

가진 것 송두리째 버려도 좋았던

꿈처럼 떴다 사라지던 그는

내 생애 최초의 무지개 같은 사람이었다

그 빛에 눈멀어 전 생애

창백한 얼굴로 떠 있는 저 낮달

◇정영숙= 대구 출생. 1993년 시집으로 등단. 시집 ‘볼레로, 장미빛 문장’,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갔을까’, ‘황금 서랍 읽는 법’, ‘옹딘느의 집’ 등 8권, 활판시선집 ‘아무르, 완전한 사랑’, 명화 산문집 ‘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 ‘목포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경북일보 문학대전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기금’ 수혜.

<해설> 왔다가 사라져간 사랑의 전모를 낮달을 통해 우회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는 로빙슛으로 날아온 사람이고 비행운처럼 하얀 띠를 두르며 하늘을 내달리다 갑자기 내 머리 위에 멈춰 선 그런 만남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곡선의 매혹을 떨칠 수가 없어, 멍한 골키퍼가 된 시인은 그 사람을 두고 생애 최초의 무지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곡선은 꿈처럼 떴다 사라지는 곡선, 그 빛에 눈멀어 가진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진술하기에 이른다. 창백한 얼굴로 떠 있는 저 낮달은 결국 그가 떠나고 남은 또 하나의 잔상은 아닐까.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낮달을 시인은 본 것이다. 언 몸의 시인이 이제 곡선의 따뜻함을 알았으니, 둥글게 빛나는 시의 알을 쑥쑥 낳으시기를.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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