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박만성 시인 '좀도둑'
[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박만성 시인 '좀도둑'
  • 승인 2024.04.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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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이다

벽 타고 올라가자

금고는 라일락 우듬지에 감춰 두었을 거야

꽃은 건드리면 안 돼!

향기는 사이렌 소리처럼 따라오니까

<감상> 시인은 담쟁이 넝쿨의 혼잣말을 받아적고 있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려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니까 들키면 안되는 속 생각이겠습니다. ‘이 집이다’를 첫행에 배치한 것은 여기 저기, 오래 헤맨 끝에 마침내! 도둑의 대상을 찾아낸 설렘과 두근거림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소리 소문없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도대체 이 집 주인은 누구일까요? 라일락 우듬지에 숨겨 둔 금고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이 집 주인은 라일락을 꽃 피운 봄이고, 금고 속 보물은 봄의 정령(精靈)이리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좀도둑의 주인공인 담쟁이 넝쿨은 라일락 향기에 함께 취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일 터, 봄의 정령도, 라일락 향기도 특정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좀도둑>의 시적 행위 설정은 선한 트릭(trick)이겠습니다. 당연히 ‘꽃은 건드리면 안 돼!’는 역설이고요. 사이렌 소리처럼 울려퍼지는 라일락 향기는 좀도둑이 우리에게 준 무상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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