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독서는 ‘배운 것을 버리는 일’이다
[박명호 경영칼럼] 독서는 ‘배운 것을 버리는 일’이다
  • 승인 2024.04.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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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는 최근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라는 책의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미래를 여는 열쇠는 책에 있고, 공부의 기본은 독서라고 생각했다” KAIST 이광형 총장은 “친구들과 어울려 리더십을 기르고, 책을 읽고 토론하며, 현장에 나가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수업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배움이 된다”라고 했다. 이 총장은 “훌륭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협동과 봉사 정신이 필수이고 도전과 창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을 기르기 위해서는 독서와 질문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한다.

미래의 인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고유 영역을 개발하고 지적·정신적 역량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독서량의 급감으로 대학의 연구 역량이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다. 장정일의 말대로, “참된 독서란 내 앞에 주어진 개별적인 책을 읽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책을 생성한 유무형의 생산 현장 전체를 읽는 것”이다. 한 개인, 한 시대를 정확하게 읽으려면 마땅히 그와 관련된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독서는 그래서 즐거운 오락이면서 동시에 처절한 싸움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2명 중 1명은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8일 발표한 ‘2023 국민독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국내 성인층의 종합독서율은 43.0%로 집계됐다. 전년(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했다.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소득에 따른 독서율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월 평균 소득이 5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의 독서율은 54.7%였으나, 월소득 200만원 이하인 경우 독서율은 9.8%에 그쳤다.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량은 3.9권이었다. 정부는 2028년까지 독서율은 50%까지, 독서량은 7.5권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인사들까지도 난독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웬만하면 필요한 정보를 스마트폰에서 습득하다 보니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의 병은 난독증이 아니라 거독(拒讀)증에 가깝다. 거식(拒食)증 환자가 음식을 거부하는 것처럼 아예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기를 거부한다. 이해력 부족이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유튜브나 SNS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내용만 반복적으로 보고 듣다 보면 인간은 판단 능력이 상실된 채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확증편향에 빠져버리게 된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대다수 한국인은 너무 바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재미 사회학자인 스탠퍼드대학의 신기욱 교수는 ‘슈퍼피셜 코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바쁨과 피상성에 무방비 상태로 중독된 한국인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재미있는 지옥’에 살고 있더라도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미’가 있다 못해 쓰려져 버릴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제 자극적이지 않은 재미가 정말 필요하다. 그것이 독서하며 노는 재미가 되면 어떨까.

우리 지역의 원로문학가인 문무학 선생이 ‘책으로 노는 시니어’를 펴냈다. 저자는 매주 월요일을 ‘책요일’로 정하고, 주말 전까지 다 읽고 주말에는 서평을 쓰며 재미있는 노후의 삶을 산다. 일상의 삶에 생기가 돌고 뇌를 쓰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실제 치매에 걸릴 확률이 가장 낮은 직업은 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정리해서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교사와 교수라는 보고도 있다.

책이 있는 곳에는 늘 아름다운 사람들이 머문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습득에만 그치지 않는다. 삶의 어려움에 지쳐 있던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책은 비전을 갖게 하고, 더 배울 동기를 부여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게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독서의 목적은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버리고(unlearn) 다시 배우는 데 있다’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21세기에서의 문맹자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20세기 말에 했던 말이다. 따라서 21C의 인재란 지식이 많이 쌓인 사람보다 지식의 갱신이 옳고 빠른 사람이다.

지식의 경쟁력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기억력에서 오지 않는다. 옳은 것을 선택하는 창의력과 결단력, 배운 것을 제때 버리고 다시 배울 수 있는 유연함과 겸손함에서 온다. 독서로 가능하다. 때마침 이달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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