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달은 기울고 매화꽃 지고
[달구벌아침] 달은 기울고 매화꽃 지고
  • 승인 2024.04.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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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시인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머릿속을 헤집는 사월, 봄밤이다. 달이와의 시절인연 앞에 서성이는 내가, 또한 가족의 모습이 아려온다.
"햐, 그새 많이 컸구나. 아이고 그래그래 반갑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짧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주저앉아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품에 안았다. 헤깝다. 몸집은 없고 뼈만 남은 듯 깃털 같다. 품에 안긴 달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재회의 순간을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던 아들의 말이 서운한 듯 울컥, 한 줄기 햇살로 스며든다.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밥 한 톨 못 먹고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더니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엄마 숨소리만 듣고도 단숨에 달려 나가더라, 참 묘하네."
올해 열 살인 달이는 자그마한 몸집에 온순하기까지 한 반려묘다. 어미젖을 떼기도 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위로이자 기쁨이 되어 주었다. 혹여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거나 할퀴기라도 할까 봐 발톱이 자라기가 무섭게 깎아주곤 했지만, 단 한 번도 달이의 발톱에 할퀴거나 긁혀 상처 난 이는 없었다.
대문 앞, 서성이는 손님이나 가족 중 그 누구의 인기척을 느낄 때면 세상 가장 반가운 얼굴을 하고 달려 나가 인사를 건네며 반겨주었다. 꼬리를 내려놓은 채 집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발자취를 사뿐사뿐 따라 걸으며 '어서 오셔요.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몸짓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달이를 두고 의사가 한 말이라며 아들이 울먹인다. 전화선을 타고 흘러든 아이의 막막함이 파도치듯 밀려와 먹먹해진다. 둥지와 가족을 떠나 객지로 떠나면서 달이도 함께 데리고 갔었다. 언젠가, 그나마 달이가 곁에 있어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버텨낼 수 있었다며 말한 적이 있다.
"걱정 많은 우리 엄마, 내 걱정일랑 조금은 내려놔도 돼. 난 괜찮아, 달이 있잖아"
달은 해와 달리 오래도록 눈빛 마주하고 앉아 있어도 눈이 부시지 않아 달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던 그날, 그 첫 만남이 기억난다. 대구신문의 '달구벌 아침'이라는 지면을 빌려 발표한 첫 글 '달이와 매화'속 주인공이 달이였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주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소제가 되어 십년을 가까이 나와 내 글속에서 어깨 나란히 걸어왔던 반려자였는데…. 첫사랑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 첫날의 기억을 되새김하듯 일부를 다시, 기록해 본다.


첫날밤을 치르고 온 달이가 밤이 이슥하도록 창가에 앉아있다. 어둠의 커튼이 창틀에 내릴 때까지 틈만 나면 그곳에 올라 봄빛이 완연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긴 꼬리를 가슴으로 들여놓은 채 석고상처럼 앉아 있다. 가끔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지나가는 직박구리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방충망을 비집고 들어온 철 지난 담쟁이 뿌리에도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보내고 있다.
달이가 앉아있는 창문 밖, 한 칸 내려선 화단에 자리 잡은 매화나무가 하나둘씩 연분홍 꽃등을 내거는 동안, 달이와 매화는 오랜 친구처럼 지난밤의 안부를 묻는 듯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사람도 아닌 동물인 달이와 자연의 한 컷 풍경에 지나지 않는 매화마저도 서로 소통하며 힘을 얻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차린 날, 사랑이니 소통이니 하는 것들이 먼 곳에 있지 않았음을 알았다.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것 안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의 풍경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봄날, 달이는 새벽부터 창틀의 위태로운 난간 위에서 근심 어린 눈빛으로 매화나무와 속삭인다. 잠시 볼일을 보러 가거나 혹은, 알약 같은 몇 낱의 밥을 먹기 위해 잠시 내려설 뿐, 이야기는 끝이 없다. 달이가 떠난 후에라도 우리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리라. 풍경 속, 바람으로 새들의 지저귐으로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테니….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글쓰기는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다. 기록으로 기억을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사람 사이 사람/ 바람 사이 바람/ 각자의 염원이 바래고 덧칠되어/ 발이 닿을 만큼 굳어지면/비로소 내 세상이 되어줘/ 나의 작은 마음도/ 그 안에 자란 나음도/ 부서지고 굳어지고 녹아내리고 나면/ (중략)/ 비로소 우리의 세상이 완벽해/ (하략)"
블루투스와 연결된 CD재생기에 담긴 웨이브투어스의 '사랑으로'가 어제를 지나 내일을 향해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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