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6) 술 생각나게 하는 석탑리 누룩바위(麴巖)...안평면 넉넉한 마음, 바위에 녹아내려 술로 나온다더라
['심쿵' 의성 국가지질공원 이야기] (6) 술 생각나게 하는 석탑리 누룩바위(麴巖)...안평면 넉넉한 마음, 바위에 녹아내려 술로 나온다더라
  • 윤덕우
  • 승인 2024.04.2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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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모양새
넓적한 판 층층이 쌓아올린 모습
지질시대 중생대 백악기 추정
오랜 세월 동안 바람·모래로 풍화
누룩바위의 전경
괴촌천 하천변 인근의 구릉지형에 위치하며, 도로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약 400m 연장된 사면에 연속적으로 발달한 누룩바위 전경. 의성군 제공

◇막걸리 재료인 누룩을 닮은 의성 누룩바위

지난해 4월 15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화성 탐사선인 큐리오시티 로버(Curiosity Rover)로부터 전송받은 ‘펼쳐진 책 모양의 바위(Open Pages Of A Book)’를 ‘단단한 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부터 따온 ‘테라 펌피르머(Terra Firme)’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거에 물이 바위의 균열을 통해 스며들면서 더 단단한 광물을 함께 가져온 결과로, 수 세기 동안 바람에 의해 모래로 연마되면서 더 부드러운 바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물질만 남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위에 그 모양과 유사한 이름을 붙인다. 수평으로 퇴적된 바위는 대체로‘시루떡바위’,‘누룩바위’ 혹은 ‘메주바위’ 간혹‘책바위’라고도 한다. 수직으로 된 모양은 ‘책바위’ 혹은 ‘널판바위’등으로 부른다. 대체로 같은 모양의 바위라도 주변에 향교, 서원이나 각종학교가 있으면 책이고, 술집이나 농가가 있으면‘누룩바위’ 혹은 사찰이나 굿당 등이 있는 곳에는‘시루떡 바위’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책 모양의 바위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술의 전설
누룩 닮은 바위에 물 새어나와
술 관련 갖가지 설화 내려와
‘음풍농월’ 민속적 풍류 보여줘

◇중생대 백악기 전기 삼각주 환경에서 생성된 석탑리 누룩바위

석탑리 누룩바위의 위치는 안평면 석탑리 산 215번지와 박곡리 산1-3번지다. 괴촌천 하천변 인근의 구릉지형에 위치하며, 도로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약 400m 연장된 사면에 연속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정자와 목재데크가 있어 잠깐 쉬어가기 좋다. 다만 주변에 떨어진 사면붕괴와 낙석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서 탐방을 해야 한다.

석탑리 누룩바위는 층리가 발달해 넓적한 판을 층층이 쌓아 올린 독특한 모양새다. 그 생김새는 술꾼에겐 누룩, 선비에게는 책, 목수에겐 판자 모양으로 보인다. 그런데 황색을 띄는 것마저 누룩과 유사해서인지 “누룩바위”로 부른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술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데, 술이 솟아나서 행인들이 즐겨 마시고 갈증을 해소했다고 한다. 현재도 물이 새어 나오는데, 이와 연관된 설화로 보인다.

석탑리 누룩바위는 지질시대를 구분하면 중생대 백악기 경상퇴적분지라는 거대한 호수 발달과 관련된다. 중생대 백악기 전기로, 화산물질을 포함하지 않는 신동층군에 속하며, 세분하면 진주층의 최상부에 해당된다. 대부분 1/16~2mm 크기의 모래 알갱이들로 이루어진 퇴적암, 즉 사암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두께 10m에 이르는 바위로, 평평한 층리뿐만 아니라 뚜렷하게 기울어짐을 보이는 사층리(cross-bedding, 斜層理)가 발달한다. 사층리란 주 층리에 대하여 경사하는 층리를 말한다. 사층리의 구조와 규모는 퇴적환경을 암시하는데, 특히 경사방향은 퇴적 당시 퇴적물의 이동방향을 지시한다. 이곳은 사층리 등의 특징들로 볼 때, 중생대 백악기 전기 때 호수 가장자리에 유입되는 하도 환경, 즉 삼각주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지형발달 작용, 풍화침식을 받아,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구상풍화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교육 장소다.

 

다시-누룩바위
석탑리 누룩바위 퇴적환경이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하도 환경 즉 삼각주 환경이었음을 보여주는 구조.

◇취생몽사(醉生夢死)의 행복을 안겨다 주었던 석탑리 누룩바위

이곳 석탑리 누룩바위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두 술과 관련된다. 지극한 효녀가 술꾼 아버지에게 절대 취하지 않도록 대접했으나 아버지의 술 욕심 때문에 맹물로 변했다는 이야기. 한 잔씩 해갈하라고 행인에게 술을 내려 주었는데 한 사람의 과욕으로 술이 맹물로 변했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교훈을 주는 전설도 있다. 주모 할머니가 금강산 구경하려고 이곳에 누룩을 쌓아놓고 갔다가 누룩이 저절로 술이 되어 행인들이 한 잔씩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민족에게 특이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민족적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술 한잔에, 노래 한 자락”이라는 안평면의 넉넉한 마음이 누룩바위에 녹아내려 술로 나온다는 전설을 낳았다. 안평(安平)이란 이름만 들어도 ‘안락하고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어느 날 어떤 행인이 의성(義城) 장을 보고 지나던 중 목이 몹시 마른 차에 그만 연거푸 두 잔을 마셔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후로는 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뒤에 오던 행인이 목이 말라 바위 아래 술이 나오던 장소에 갔으나 술이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다려도 더 나오지 않자. 홧김에 그 자리에 있던 술 사발(대접)을 그만 반대편 음지 산으로 던져버렸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쪽 산을 ‘사발음지(沙鉢陰地)’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라는 내용인데, 의성군에서 만든 안내표지판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농특산물로 빚은 전통주

100년 역사 간직 '춘산막걸리'

'한국애플리즈'의 의성사과 와인

15년산 전통 브랜디 '금과명주'

◇의성의 풍요로운 농특산물로 빚은 전통주

전설 속의 누룩바위처럼 푸근한 의성 인심을 맛볼 기회가 있다. 작년 14회와 재작년 13회 모두 의성에서 개최된“의성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은 술) 주인(酒人) 선발대회”에 참석하는 방안이 있었다. 아니면 그날 아예 술자리 잡고 누워 배기면서 의성 술맛을 제대로 보는 방안이 있다. 의성은 의성진쌀, 사과, 마늘 등 다양한 농특산물을 이용한 전통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의성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로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춘산면 “춘산양조”의 춘산막걸리가 있고, 구천면 모흥3리 선창마을 주민들이 직접 빚은 “선창 할매막걸리”가 있다. 청년창업 “무원칙주의 모두막” 등도 있다. 의성을 대표하던 막걸리인 “합명회사 이루화 농업회사법인”의 “대빵막걸리”가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게 아쉽다. 전통주 창업교육과 연계한 “전통주교육용 양조장 조성”사업도 안계면 일원에 추진 중이니 앞으로 의성 전통주 발전을 더욱 기대해 본다.

단촌면에는 막걸리 외에도 의성사과로 만든 와인 증류주를 생산하는 “한국애플리즈”가 있는데, 오크통 대신 한국전통옹기에 숙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미디엄 스위트 사과와인으로 도수 11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스오차드”, 15년산 전통 브랜디로 40도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짙은 사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금과명주”가 있다. 술 한 잔 걸치고 강진의 ‘막걸리 한잔’과 같은 구수한 노래 한 자락가락을 흥얼거려본다.

의성에서 생산되는 술을 마셔보면, 특이한 술맛이 매력이다. 술의 정령인지 뭔가 녹아있다. 아마도 의성군민의 정성이고 의리인 모양이다. 아마도 좋은 음식, 얌전하게 마시고, 술술 풀리는 일만이 있기를 기원함이다.

◇의성을 대표하는 술, 홍술

홍술이 어떤 술이냐고? 홍술이란 찹쌀에다가 백년초를 넣어 만들 홍술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922년 홍술(洪述, 출생미상~ 929년7월14일)은 문소군(聞韶郡) 태수로 왕건에게 귀부해서 문소군에서 의성부로 격상시켰다. 929년 7월14일 의성부성만을 견훤(甄萱, 867~ 936)의 정예군 5천 병사에게 함락당하지 않고자 그는 사력을 당했다. 그러나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 전사당했다. 뒤에 태조 왕건으로부터 “의를 지키다가 죽은 홍술 장군의 고을(爲義洪述之鄕城)”이라고 의성(義城)으로 사명(賜名)했다. 의성김씨 족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김홍술(金洪術) 장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홍술, 나무위키에는 “정사에는 성씨가 따로 나오지 않지만 더 후대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김씨로, 김홍술로도 알려져 있다. 의성김씨 족보에서는 그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기록했지만 족보자료는 후대 조선시대에 숭조사업으로 편찬된 것이 많아 정사보다 신뢰성이 떨어지고, 후삼국시대가 끝나고도 40년 이상을 더 살았던 경순왕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홍술은 오히려 경순왕보다 윗 세대일 가능성이 높아 가계도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 향토사학자는 홍술 장군이 홍씨(洪氏)라고 해서 그렇다면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도 홍씨냐고 반문했다.

이런 사연에 연유해 의성 술은 의리에 불타고 있다고“파이어 워터(fire water)”라고 한다. 의성 금성산을 보니 첫눈에 성인용 우화‘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의 첫 장에 나오는“거대한 보아(Boa) 뱀이 코끼리를 삼켜 녹이고 있는 모습”이다. 누룩바위 이야기도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눈으로 겉만을 볼 것이 아닌“마음으로만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핵심적인 건 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성의 의리에 취한 김에 운람사(雲嵐寺)를 살펴보면, 그 고찰의 위치는 의성군 안평면 신안2길 223에 있는 고운사 소속 사찰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창건했다, 사찰명 운람사(雲嵐寺)는“산 중턱에 걸린 구름이 골바람의 기운으로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山雲嵐上天登)”는 뜻을 담았다. 아울러 운람사의 뒷산은“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산(天登山)”이 되었다. 보광전(普光殿)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의 복장 기록으로 봐선 1602(선조35)년, 1704(숙종20)년에 중수되었다. 그리고 1741(영조17)년에 지장 탱화, 1774년 반자(盤子, 일명 金鼓), 1827에 산신(山神) 탱화를 조성했다. 1999년 보광전(普光殿)을 중창했다. 2011년 4월 27일에 경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 유물 29종 167점이 있다. 복장 유물(腹藏遺物)에는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Maha parinirvana Sutra (The Nirvana Sutra), the First Tripitaka Koreana Edition, 初雕本 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 크기 29.4cm × 167.7cm}이 보물로 지정됐다.

보광전(普光殿) 앞에는 신라 말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원래는 보광전(普光殿) 뒤편 서남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근래에 현 위치로 옮겨 설치했다. 1층과 2층의 체감비는 1:2 정도로 제작기법으로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339cm이고 옥신 3층 모두가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초층(初層) 옥개석 모서리에는 풍탁(風鐸)을 달았던 구멍 2개가 뚫려 있다. 탑신의 균형과 풍탁의 경쾌한 리듬을 생각하면 목소리 고운 팔등신 미녀로 평가함이 바람직하다.
 

다시-누룩바위2
누룩바위 암석의 모서리 부분이 풍화 작용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둥근 형태로 풍화가 진행되는 구상풍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변 불규칙한 모양의 사암을 쌓아 만든 고려시대 석탑

인근 석탑리 산208번지 고려 시대 석탑인 1997년 12월 1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탑리 방단형적석탑(石塔里方壇形積石塔)을 찾아간다. 이 탑은 돌을 깎아서 만든 석탑이 아닌, 건물터만큼 넓게 낮은 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계단모양의 층단을 만들어 주변에 있는 불규칙한 모양의 사암을 사각형으로 쌓았다. 아마도 석탑리 누룩바위를 이루는 암석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단에 걸쳐 네 면에 목탑과 같이 양각을 하는 석불을 위한 감실(龕室)을 만들었다. 현재 윗부분이 무너져 원래 몇층이었는지 알 수 없고, 기단과 탑신의 구분도 애매한 독특한 형식의 탑이다.

이 돌무더기 적석탑(積石塔)은 돌을 하나씩 갖다 놓으면서 기원했던 정성과 마음을 쌓았던 탑(積心塔)이다. 하필 이곳에 정성과 마음을 쌓았던 이유를 알고자 나침판으로 방향을 알아보았다. 85도E(북동동)으로 새벽 별(Morning Star)이 뜨는 방향이다. 샛별은 연중 일정한 곳에 뜨는 게 아니다. 6개월은 새벽 동쪽 하늘에. 나머지 6개월은 초저녁 서쪽 하늘에 뜬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다. 언제 동쪽 하늘에 뜨는지는 천문관측을 통해서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안평에 내려오는 구전민요“쪼이나! 쪼이나! 도까이쇼!”

누룩바위 관련 노래를 탐문하던 가운데 석탑리가 아닌 금곡(金谷)2리 누곡마을 사셨던 김덕순(金德純, 1946년생) 할머니로부터 지난 2011년에 구비문학에 채록되었다. 의성 구전민요 가운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기를 돌게 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쪼이나! 쪼이나! 도까이쇼!”라는 노래가 있다. 참으로 신기롭게도 일본 축제(祝祭, 마츠리)에서 나오는 조흥구(助興句)와 같았다. 그래서 통시적 어원(通時的 語源)과 의미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신라말(조문국)에서 일본에 전달되었다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조문국 민요가 누룩바위에 술로 녹아내렸다가 물로 변해 일본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번에 지질명소로 누룩바위를 다시 탐색하는 바람에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알처럼” 옛 모습과 의미를 드러내었다.

여기서 소개하면 “꽃 같은 처녀가 꽃밭을 매는데, 더벅머리 총각이. 코랴! 내 손목 잡노라. 쪼이나 쪼이나 도까이쇼. 야 이 총각아 내 손목 놓아라. 범 같은 나의 오빠. 코랴! 망보고 있노라. 쪼이나 쪼이나 도까이쇼. 야 이 처녀야 그 말을 말아라. 범 같은 너의 오빠. 코랴! 내 처남 되노라. 쪼이나 쪼이나 도까이쇼” 다. 대구역사문화대전 사이트에는, 2002년 출판된 김광순의 저서 “한국구비문학 2”에 따라 대구 대명동에서 채록된“꽃밭가”와 사설이 유사하다고 되어 있다.

먼저 오늘날 일본어로 분석하면,“돗코이쇼(どっこいしょ)”는 우리말로는 “영~차~”에 해당한다. 일본어로 둔갑한“코랴(こぅら)”은 우리말로“봐라”혹은“어마나”다.“쪼이나”역시 일본인 학자도 모른다. 우리말을 교묘하게 일본어로 둔갑시켜“(맘) 조여드나?”는 표현이다.“돗코이쇼(どっこいしょ)”는 오늘날 일본축제 때에 많이 쓰고 있다. 유사한 조흥구(助興句)로는 “욧코이쇼(よっこいしょ)”, “요이사(よいさ)”, “오이사(おいさ)” 혹은 “옷숏쇼(おっしょっしょ)” 등으로 응원하는 후렴(조흥)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조흥구가 조문국(신라)에서 전파되었다.즉“돋구이소(돋우이소)”다. 백제에서는 “돋우세요”, 고려 시대는 “아으어강됴리(井邑詞)”,조선시대“어기여차~(뱃노래)” 혹은 “영~차~”였으나, 오늘날은 “아~자~”로 변천했다. 그렇게 보면 신라말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오늘날 일본어“돗코이쇼(どっこいしょ)”가 조문국의 “돋구이소(돋우시소)”라는 경상도(신라) 말의 원형이 그대로 전승되었다. 오늘날 일본노래에선“소란부시(ソランブッシュ)”, “난추소란(ナンチュソラン)”혹은 이키타 칸토마츠리에서도 이런 조흥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당면하고 보니, 지난 1985년 고(故) 박찬(朴璨) 변호사께서 연구하신 결과를 춘산면 빙계계곡 빙혈 동굴 내부에다가 석판으로 새겨 놓았다. 그 석판에는 조문국에서는 일본 규슈 및 혼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판각했다. 조문국(召文國)의 민요가 일본에 전파된 사연과 앞에서 언급했던 일본인 “하루야마(春山, ハルヤマ)”의 일본 도래에 대해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고(故) 박찬(朴璨) 변호사의 조문국 연구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하면 “중국 주나라 소공(召公)의 손녀 김학여왕(金鶴女王)이 BC 10세기에 중국 북동부에서 한반도로 건너왔다. 의성에다가 모권제 부족국가를 개국했다. 즉 여왕국을 건국했다.

 

글=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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