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나누고 가게’, 운조루의 ‘타인능해’ 정신 실천하는 이들처럼…
[호일당에서] ‘나누고 가게’, 운조루의 ‘타인능해’ 정신 실천하는 이들처럼…
  • 윤덕우
  • 승인 2024.04.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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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선순환
전남 산동면 ‘나누고 가게’
저소득층 대상 물품 자유 이용
“그동안 받은 만큼 나눠야죠”
이용객들 힘모아 기부 잇따라
운조루 사랑채
운조루 고택의 사랑채. 운조루 가문은 ‘타인능해’ 뒤주로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지난달 말 한 TV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반갑기도 한 뉴스를 보았다. 총선(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을 11일 앞둔 시기였다. 선거와 관련된 뉴스가 쏟아지는 데 모두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혀 없는 언행과 소식들만 난무했다. 중도층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만 더할 뿐이었다.

좋은 기운을 앗아가는 이런 뉴스 속에 무더위 속 청량한 바람과 같은 소식이었다. 반갑기도 한 것은 그 내용이 10여 년 전쯤에 필자가 취재했던 종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TV에서 소개한 것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나누고 가게’였다. 이 작은 가게에는 밀가루와 참기름, 화장지 등 여러 생필품이 진열돼 있다. 주변 지역의 어려운 이웃 주민들은 이러한 물품 중 필요한 것을 무료로 가져 갈 수 있다. 한 주민은 자신도 기부해야 하는데 기부 물품 중 필요한 것을 가지고 갈 수 있으니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나누고 가게’는 매주 수요일 문을 열고 있는데, 지난 3년간 3천 명에 정도의 이웃들이 이용했다. 후원 물품은 지역민과 출향 인사 등 독지가들의 기부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용객이 정성을 모아 기부도 하는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받을 만큼 받았으니까 혹시나 또 적자 나서 안 할까 싶어 기부한 거예요. 이렇게 나눠준다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라고 이야기했다.

산동면 거주 저소득층과 복지 사각지대 가구가 월 3만 원 상당의 물품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무료 나눔 가게인 ‘나누고 가게’는 산동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관으로 2021년 5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식료품, 생활필수품 등 물품은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을 받아 채워 놓고, 가게는 협의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처음 문을 열 때는 2021년 말까지만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기부가 이어지면서 운영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운조루
낙안군수 지낸 무관 류이주
구례군 토지면에 건립한 고택

매일 뒤주에 쌀 한가득 채우고

누구나 자유롭게 먹도록 허용

 
운조루 뒤주1
운조루의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

◇누구나 퍼 갈 수 있는 ‘타인능해’ 뒤주의 부활

‘나누고 가게’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양반 고택 운조루(雲鳥樓)의 뒤주에 새겨진 문구인 ‘타인능해(他人能解)’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가게다. ‘타인능해’는 ‘누구나 열 수 있다’는 뜻의 글귀로, ‘누구나 이 뒤주의 쌀을 퍼가도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운조루는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1726~1797)가 처음 건립한 고택이다. 뒤로는 지리산 남쪽 자락이 두르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 너머로는 멀리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풍수 전문가가 아니라도 살기도 좋고 풍광도 좋은 명당임을 알 수 있다.

대구 출신의 무관인 류이주가 1776년부터 6년에 걸쳐 지은 사대부 가옥인 이 고택은 ’운조루‘라는 당호가 있는 사랑채를 비롯해 안채, 사당, 행랑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오미리 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金環落地)의 형상이라고 한다. 금환락지를 찾아 집을 지으면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류이주는 이 지역에 이주하게 되면서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고, 은퇴 후 이곳에서 세거를 이루며 살겠다고 작정했다. 그는 운조루 건축을 시작한 후 함경도 함흥으로 발령이 났을 때도 공사 마무리를 위해 축지법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천리 길을 오가며 작업을 독려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운조루‘라 당호는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雲無心以出岫), 새는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올 줄 아네(鳥倦飛而知還)‘라는 구절의 첫머리 두 글자를 따와 정했다고 한다. 운조루는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타인능해‘라는 문구를 써 놓은 운조루의 쌀뒤주는 류이주가 ’누구라도 그날 필요한 만큼의 쌀을 자유롭게 가져가게 해 배고픔을 없애겠다‘는 마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류이주는 쌀 두 가마니가 넘게 들어가는 이 뒤주를 항상 채워두었다. 처음엔 류이주의 마음을 믿지 못한 동네 사람들이 욕심을 내 많은 양의 쌀을 가져갔지만, 매일같이 다시 쌀이 차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쌀만을 가져갔다고 한다.

류이주의 후손들 역시 그의 뜻을 이어가며 가진 자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모범적으로 실천했다. 덕분에 동학혁명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운조루는 무사할 수 있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배려·나눔이 어느때보다 중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 맑듯

상류층부터 나누는 삶 실천을

◇나눔과 배려의 가풍 일군 ‘운조루’

운조루는 또 굴뚝이 매우 낮은 점이 눈길을 끈다. 큰 규모의 이 고택에는 높이 쌓아올린 멋들어진 굴뚝이 없다. 굴뚝은 전혀 예상치도 못하는 곳에,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숨어 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이 집의 굴뚝 연기를 보면서 더욱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잘 빠진다는 것을 집 주인이나 목수가 몰라서 굴뚝을 이처럼 낮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류이주는 17세에 서울로 올라가서, 1753년 28세에 무과에 급제했다.1767년 수어청 파총(종4품의 무관직)이 되어 남한산성을 쌓는 일에 동원되었다. 1773년에는 낙안의 세선(稅船: 나라에 바치는 곡식을 실어 나르는 배)이 부서져 조세가 제때에 올라오지 못하자, 영조는 당시 낙안군수였던 류이주를 세미(稅米: 조세로 나라에 바치던 쌀) 이외에 다른 물품들을 함께 실어 배를 파손시켰다는 죄로 삼수로 유배시켰다.

이듬해 풀려난 그는 가족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월평으로 갔다가, 다시 토지면 오미리로 이주했다. 그가 이주한 땅은 재령이씨 일가 소유로 돌이 많고 척박하였으나, 명당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반 주택으로 평가받는 운조루를 구상했다. 류이주가 직접 설계한 운조루는 1776년 9월에 상량식을 가졌고, 1782년 용천부사로 있을 때 완성했다. 긴 공사 끝에 99칸의 대저택이 완성되자 류이주는 일가친척들을 모아 함께 살도록 하였다.

운조루의 ’타인능해‘ 뒤주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가게가 ‘나누고 가게’이다. 방식은 바뀌었지만, 어려운 이웃을 배려한 타인능해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운조루의 ‘타인능해’ 뒤주, 그리고 그 정신을 200년 후에 다시 새기고 실천하는 이들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가진 자들, 상류층과 지도층이 그 사회적 위치에 걸 맞는 삶을 실천하는 ‘노를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타인능해’ 뒤주가 보여준다.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흉년에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등의 가훈을 실천하며 300년을 내려온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도 같은 사례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극단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도 악화되고 있는 세상이다.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타인능해’나 ’나누고 가게‘와 같은 정신, 배려와 나눔의 마음이 주류로 흐르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선진국은 요원할 것이다. 아랫물 곳곳이 맑아도 윗물이 맑지 않으면 세상에 맑은 물이 흐르기 어렵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재벌들이 운조루와 최부자집의 정신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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