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신의 손’ 이라 불리던 日 고고학자, 알고보니 ‘사기극’
[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신의 손’ 이라 불리던 日 고고학자, 알고보니 ‘사기극’
  • 김종현
  • 승인 2024.04.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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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본의 역사날조
50만년 전 아슐리안 돌 주먹도끼
1978년 경기도 전곡리서 발굴
1980년 충북 단양 석회동굴서
70만년 전 구석기인 흔적 발견
‘조선상고사 상한은 청동기시대’
여기던 일본의 자존심 무너져
80만년 전 전기구석기시대 유물
발굴 성공한 日 학자 후지무라
학계서 ‘신의 손’ 불리며 주목
단양금굴
1980년 단양금굴에서 BP 70만 년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림 이대영

◇아슐리안 돌주먹도끼가 석기산업혁명을 개막

팔레스티나 카르멜산(Palestine Carmel Mountain) 타분 동굴(Tabun Cave)에서 8천여 개의 주먹도끼(握斧, hand-ax)가 출토되었다. 그 당시 인류는 시난트로푸스형 구인류(Sinanthropus hominids)였다. 이에 반해 연천 전곡리유적에서는 4천여 점의 출토물 가운데 아슐리안 주먹 돌도끼(Acheulian stone hand ax)는 몇 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선조들은 아슐리안 돌 주먹도끼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 붙은 살점을 발기며, 불구덩이에 불을 피워놓고 익은 고기를 나눠 먹으면서 거대한 매머드(Mammoth)와 같은 동물사냥을 위한 협공전략(joint-attack strategy)을 구사했다. 동시에 안전을 기원하는 제례의식(service ritual)도 거행했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서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그 때 그들은 이미 지구촌을 덮고 있었다. 따라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그들은 서서히 지구촌 활동무대에서 사라졌다. 신석기 농경사회를 열었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날렵한 행동과 두뇌를 써서 거대한 매머드 사냥(mammoth hunting)을 시도했다. i) 아무리 큰 짐승이라도 겁먹지 않고 골짜기 몰아넣기(driving into the valley ii)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게 하는 방법(rolling off a cliff), iii) 길목의 함정에 빠뜨리기(Falling into a trap on the path), iv) 나무와 풀 등으로 위장하고, 올가미(trap) 설치(Disguised with trees and grass, and set up a noose)하는 방법 등으로 사지(死地)에 몰아넣고 일제 총공격(一齊總攻擊)으로 실패를 허용하지 않았다. v) 통나무를 불로 태우고, 탄 부분을 주먹도끼로 파서 통나무배(log boat)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거대한 고래사냥까지 했다. 대표적으로 울주군 반구대(蔚州郡 盤龜臺)에 새겨진 고래잡이 암각화(whaling petroglyphs)가 현존하고 있다. 그 그림엔 멀리 일본까지 고래사냥을 나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래사냥에서 희생당했던 고래의 정령에게 사후세계에서 환생토록(For the whale spirit to be reincarnated in the afterlife) 기원했던 제례의식 그림도 포함돼 있다. 종합예술 차원에서 춤과 음악까지 동원했던 제례를 낱낱이 그렸다.

◇모비우스 이론의 수정

한편 모비우스 이론(The Movius Line)이란 하버드대학교 고고학자 모비우스(Hallam. L. Movius, 1907~ 1987)가 제안한 이론이다. 모비우스 교수는 1948년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는 아슐리안 돌 주먹도끼((Acheulian stone hand ax)가 발굴되지 않았기에 그 대신에 돌 찍개(stone chopper)를 사용하는 구석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봤다. 즉 양날형 구석기(double-edged paleolithic)가 나온 아프리카나 유럽에 비교하여 아시아는 석기제작신기술(직접 떼어내기 제작기법)이 떨어져, 외날형 구석기(single-edged paleolithic)만 만들었다고 봤고, 그렇게 주장했다.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선 1978년 경기도 연천시 전곡리(京畿道 漣川市 全谷里) 아슐리안형 돌 주먹도끼((Acheulian stone hand ax)가 나오기 이전까지 ‘모비우스 이론(The Movius Line)’을 정설로 받아들었다. 그(모비우스 교수)는 구석기 문화권을 두가지로 나눴다. 선진제작권(advanced production area)으로 인도 서쪽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를 포함, ‘아슐리안 문화권(Acheulean cultural site)’이라고 했다. 이와 대비해 후진제작권(後進製作圈)으로 인도 동쪽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는‘찍개 문화권(chopper cultural site)’으로 양분했다.

여기서, 아슐리안 문화권이란 1859년 프랑스 생아슐(St. Acheul, France) 지방에서 주먹도끼(handax)가 발견됨으로써 이를 잣대로 동아시아 지역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봤다. 아슐리안 돌 주먹도끼(Acheulean stone hand ax) 제작기법이 i) 모든 면을 타격하여 제작했기에 한쪽은 둥글게, 반대쪽은 뾰족하게, 양쪽날을 좌우대칭 모양으로 한 획기적인 ‘뗀 돌 도구(end-cut stony tool)’였다. 사실 아시아로 이주해 정착한 선인들도 손도끼 제작기법(hand-ax making skill)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제작할 적합한 재료가 부족했다. 기술적 병목현상(technological bottleneck)을 겪은 것이다. 따라서 사용하지 않으니 익혔던 기술도 잊어먹었다. 돌 도구 제작에 필요한 재료(규암)로부터 소외됨으로서 지식이 다시 전달되지 않았다.

모비우스 교수는 단순한 제작기법에만 한정하지 않고 아예 ‘아슐리안 산업(Acheulean industries)’ 혹은 ‘찍개 도구산업(chopper chopping-tool industry)’이라고까지 호칭했다. 분명히 당시 돌 주먹도끼는 혁신적이고 첨단다용도 무기(innovative cutting-edge multi-purpose weapon)였다. 오늘날 표현을 빌린다면 ‘맥가이버 칼(Macgyver knife)’이었다.

이렇게 BP 50만 년에서 BP 30만 년으로 추정하는 아슐리안 돌 주먹도끼(Acheulean stone hand ax)가 한국에서 발굴된데 이어 1980년에는 단양금굴(丹陽金窟, 충북도 단양군 가곡면 석회동굴)에서는 BP 70만 년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상고사의 상한선은 청동기시대다(朝鮮上古史の上限線は銅器時代です.)”라고 묵시적으로 교시했던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역사적 한계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에 일본 고고학계(日本考古學界)는 얼마나 두 눈 뜨고 봐줄 수 없었던지 ‘신풍특별공격대(神風特別攻隊, かみかぜとくべつこうげきたい)’와 같이 ‘신의 손(God’s Hand)’을 빌리는 추태까지 보였다. 결과는 ‘후지무라의 발굴 날조’다. “남 잘되는 꼴 두고 못 보는 본색(他人がよくなるまま見えない本色)”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신의 손에 의한 마술(神の手に魔法)’은 1981년에는 BP 4만 년으로, 1990년 말에는 BP 70만 년, 2000년에는 BP 80만 년으로 전기구석기시대(前期舊石器時代) 유물의 소급연대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결국은 뚝! 2000년 11월5일 마이니치 신문( 每日新聞)에 의해 매장했다가 발굴하는 현장이 몰래 촬영되어 역사 날조가 들통이 났다.

 

글=김도상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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