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이다.”라는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말을 입증이나 하듯 노년 들어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노부부 이야기다.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를 그린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다. 2014년 11월 개봉 당시 독립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80만 관객을 동원해 큰 화제를 모았다. 백세를 앞둔 시골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 못잖게 달달하고 아름다웠다. 할아버지가 98세에 하늘나라 부름을 받아 떠나고 홀로 남은 강계열 할머니는 10년을 더 살아 지난해 6월 백수연을 맞았다. 부부가 함께 천복을 다 누린 최상급 노후이지만 대부분 갑남을녀에겐 꿈같은 소리다.
그런가 하면 2018년에 방영된 [인간극장] ‘삶이 끝날 때까지’처럼 병든 배우자를 위해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순애보적인 노부부도 있다. 충청도 청양의 고택에서 고관절염에 걸린 아내(영희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60여년간 삶의 여정을 함께해온 승팔 할아버지(84세) 같은 노부부의 모습은 황혼의 부부에게 좋은 위로가 된다. 참담한 것은 부부가 함께 환자인 경우이다. 80대 노인이 80대 배우자를 간병하는 등 노쇠한 노인이 배우자를 간병하는 모습을 요즘 주변에서 쉽게 보게 된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간병‘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독거노인도 그렇지만 간병이 필요한 노인 부부 세대가 자녀들의 무관심 속에 고립돼 있을 경우 간병을 감당하지 못해 동반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일도 없지않다. 노환에 시달리는 노부부들의 생명줄은 배우자의 사랑과 측은지심에 더하여 자녀들의 각별한 도움이다. 손 내밀데 없는 노후는 그야말로 천길 벼랑끝이다. 필자도 요즘들어 건강이 좋지 않은 터에 아내가 거동이 불편하여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의 전화가 번갈아 오고 반찬까지 챙겨 주는 등 애써 주는 덕에 그럭저럭 견딘다.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도 사랑하는 마음이면 견딜 수 있는 게 사람의 세계이다.
100세 시대에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어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이 잠복해 있다. 부양료 문제를 두고 부모와 자식 간에 부양료 청구 가족소송이 야기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노노 부양이 더 이상 가족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중장년층의 이중 부양 부담이 높아지면 결국 가족 간 갈등 증폭과 가족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의 이중 부양 부담을 덜어줄 다양한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사회 변화에 따라, 상당수 OECD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 돌봄자에게 ‘돌봄자 수당’이나 ‘간병수당’ 형태의 지원제도를 도입해 경제적인 부담을 대폭 덜어주었으면 한다.
이복수 한림성심대 교수의 ‘고령사회, 노노老老부양 실태와 정책방향’을 보면 일본, 영국, 스웨덴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의 고령 후기 노인들은 지역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주로 자신의 집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영국은 노인보호주택과 주택수리지원을 통해, 스웨덴은 보조금 지원을 통해 생활의 계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저영양 상태에 있는 고령자를 위한 영양 대책으로 일본은 개호식품 개발보급을, 영국은 배식 서비스를, 스웨덴은 반조리 식품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다. 그리고 통합적 생활지원 서비스로 일본은 생활지원사업을, 영국은 홈 케어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자립생활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재택 의료서비스로서 개호, 의료, 주거, 생활지원, 예방이 일체적으로 제공되는 지역 포괄케어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요양-간병에 대한 국가 지원의 사각지대로 인해 부모님 간병비 부담과 간병 서비스 질적 수준에 대한 국민의 걱정이 심각하다”며 “국민의 부담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요양-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 그 약속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을 하면 천국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노년은 인생의 무덤이 아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절정이다.
그런가 하면 2018년에 방영된 [인간극장] ‘삶이 끝날 때까지’처럼 병든 배우자를 위해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순애보적인 노부부도 있다. 충청도 청양의 고택에서 고관절염에 걸린 아내(영희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60여년간 삶의 여정을 함께해온 승팔 할아버지(84세) 같은 노부부의 모습은 황혼의 부부에게 좋은 위로가 된다. 참담한 것은 부부가 함께 환자인 경우이다. 80대 노인이 80대 배우자를 간병하는 등 노쇠한 노인이 배우자를 간병하는 모습을 요즘 주변에서 쉽게 보게 된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간병‘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독거노인도 그렇지만 간병이 필요한 노인 부부 세대가 자녀들의 무관심 속에 고립돼 있을 경우 간병을 감당하지 못해 동반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일도 없지않다. 노환에 시달리는 노부부들의 생명줄은 배우자의 사랑과 측은지심에 더하여 자녀들의 각별한 도움이다. 손 내밀데 없는 노후는 그야말로 천길 벼랑끝이다. 필자도 요즘들어 건강이 좋지 않은 터에 아내가 거동이 불편하여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의 전화가 번갈아 오고 반찬까지 챙겨 주는 등 애써 주는 덕에 그럭저럭 견딘다.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도 사랑하는 마음이면 견딜 수 있는 게 사람의 세계이다.
100세 시대에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어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이 잠복해 있다. 부양료 문제를 두고 부모와 자식 간에 부양료 청구 가족소송이 야기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노노 부양이 더 이상 가족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중장년층의 이중 부양 부담이 높아지면 결국 가족 간 갈등 증폭과 가족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의 이중 부양 부담을 덜어줄 다양한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사회 변화에 따라, 상당수 OECD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 돌봄자에게 ‘돌봄자 수당’이나 ‘간병수당’ 형태의 지원제도를 도입해 경제적인 부담을 대폭 덜어주었으면 한다.
이복수 한림성심대 교수의 ‘고령사회, 노노老老부양 실태와 정책방향’을 보면 일본, 영국, 스웨덴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의 고령 후기 노인들은 지역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주로 자신의 집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영국은 노인보호주택과 주택수리지원을 통해, 스웨덴은 보조금 지원을 통해 생활의 계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저영양 상태에 있는 고령자를 위한 영양 대책으로 일본은 개호식품 개발보급을, 영국은 배식 서비스를, 스웨덴은 반조리 식품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다. 그리고 통합적 생활지원 서비스로 일본은 생활지원사업을, 영국은 홈 케어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자립생활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재택 의료서비스로서 개호, 의료, 주거, 생활지원, 예방이 일체적으로 제공되는 지역 포괄케어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요양-간병에 대한 국가 지원의 사각지대로 인해 부모님 간병비 부담과 간병 서비스 질적 수준에 대한 국민의 걱정이 심각하다”며 “국민의 부담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요양-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 그 약속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을 하면 천국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노년은 인생의 무덤이 아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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