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정희 대통령 동상에 대한 나의 생각
[특별기고] 박정희 대통령 동상에 대한 나의 생각
  • 승인 2024.05.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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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욱-박정희아카데미원장
강영욱
박정희아카데미 원장
계명대 전 석좌교수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새로 건립되는 대구도서관 공원을 박정희 공원으로 명명하고 대형 동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하여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 이어 본회의에서도 통과하였다.

대구지역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은 산업화하여 경제를 살린 것 외에는 없고,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장기집권을 위해 독재를 한 독재자라고 한다. 그런 박정희를 지금껏 잘(?) 모셔줬으면 그것으로 과분한데 동상을 세워 우상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한편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필자도 1969년 경북고교 3학년때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시절 4년 내내 박정희 유신정부 반대 데모로 이어지는 시대에 동참한 적이 있다. 지금은 사고의 전환으로 박정희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후 6년째 박정희 리더십과 부국강병을 이룩한 밝은 면을 가르치고 있다. 광주에 세워진 김대중 대통령 동상도 우상화의 일면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의 동상 건립도 우상화라고 생각지 말고 존경심과 감사함으로 사고를 전환하자.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휴전 후 미국 원조(대충자금)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였다. 국민소득 70달러에 지나지 않았고 “전쟁위험국가”로 분류되어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우리를 돕지 않았다. 미국 원조가 거의 반으로 줄었던 1959년에는 굶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신조어 “보릿고개”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 때 그 시절을 노래한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 가사가 생각난다. “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은 민생은 돌보지 않고 신파(윤보선)와 구파(장면)로 나누어져 연일 권력투쟁이었다. “데모로 해 뜨고 해진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년 2,000회 이상의 데모로 얼룩져 있었다. 심지어 어른들 데모를 그만하라고 하는 국민(초등)학생 데모도 있었다. 이정재 등과 같은 정치깡패는 서민들을 괴롭혔고, 42개 언론사가 392개로 증가하여 사이비 기자가 군부를 등쳐먹어 신문망국론까지 제기되었다. 이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킨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올 것이 왔다.”는 윤보선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산림녹화로 우거진 푸른 산,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포스코), 구미전자단지, 창원기계단지, 구로공단, 지하철 1호선, 여천 석유화학 단지, 주민등록증, 고리원전 등 전국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수많은 업적물이 전시된 지붕 없는 박물관이 있다. 정신 문명적으로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세계 굴지회사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등의 기반을 닦아 “우리도 세계 일등 국민이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 지역에 동상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그 분의 업적이 더 빛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동상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기념물로서 조형물을 하나 만든다는 의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업적뿐만 아니라 근면, 검소와 성실함으로 점철된 그 분의 일상생활을 되새겨야 한다. 청와대 화장실 변기 속의 벽돌, 마지막 매고 있던 헤어진 혁대, 낡은 구두, 금칠 벗겨진 손목시계 그리고 남겨진 것이 한 푼도 없는 재산에서 그 분의 생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 정신을 우리 일상생활에 녹일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 대구는 서로 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대구사범학교, 6.25 전쟁 수행, 계산성당에서 결혼, 신혼 및 자녀를 낳은 곳이 대구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구는 삼성제일모직, 코오롱 등 섬유산업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킨 곳이다. 그 시절만 해도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혁신의 가장 모범적인 지역이었으며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지역적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제3의 도시로 부흥했다.

동상 건립 목적은 인물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 지역과 연관성을 알리는 홍보적인 의미도 포함한다. 그동안 대구는 산업화 시대 성공 경험에 안주한 결과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못했고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 청년들의 이탈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우리의 자세를 한 번 더 일깨워 대구의 내일을 기약하자. 이제는 사고의 전환 속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자세로 하나된 대구를 건설하자. 이제 박정희 정신으로 대구뿐 아니라 대한민국 재도약을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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