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출산 감소 방치한 나라치고 부흥한 역사적 사례 없어
[미래의 날개 먹거리와 일자리] 출산 감소 방치한 나라치고 부흥한 역사적 사례 없어
  • 김종현
  • 승인 2024.05.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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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선인들은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했을까?
100년 후, 현재 인구 30% 줄어
2750년엔 우리나라 인구 소멸
‘로마제국 쇠망사’서 해법 찾아
BC18년 ‘미혼자·무자녀’ 처벌
AD 9년 ‘결혼장려법’으로 보완
지배층 도덕적 해이 ‘출산 기피’
저출산으로 인해 로마 불타올라
저출산고령화
로마의 몰락에는 저출산이 있다.

◇저출산 늪에서 탈출을 모색한다면

국가정책의 원초적 기반(basic basis)은 인구와 영토다. 인구정책에 대해 언급하면, 2023년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으로 “15년간 250조 원을 투입하여 저출산 대책을 실시했으나 특별한 효과도 없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금년도 OECD 꼴찌수준인 여성 1인당 총출산율(TFR)은 0.7명으로 100년 후에는 현재인구의 30%로 줄어듦을 전망했다. 더욱 통계적으로 현재의 저출산율(低出産率)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275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소멸한다. 이런 예측은 이미 2014년부터 국내외적으로 인구회자(人口膾炙) 하였다. 이렇게 쪼그라듦에는 “6.25년 전쟁으로 먹을 것 없는 이 나라에 인구만 바글바글”이라는 말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지구상 최빈국 한국을 구하고자 1961년에 i)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경제적 파이를 키우자(Let’s grow the economic pie)‘는 시정구호(施政口號)를 내걸었다. ii) 가족계획의 구호가 “먹는 입 하나라도 줄이자.”였다. 그때 국가시정(國家施政) 노래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였다. 그렇게 시작, 1995년까지 35년간 실시하여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에 올라섰다. 인구정책도 연착륙 궤도에 들어서는 큰 성과를 얻었다. 아무리 밝은 태양에도 그림자는 생긴다. 출산에서의 자료를 보면 1961년 여성 1인당 6.0명에서, 1983년 2.1명, 2001년 1.31명이었다. 2010년 1.12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국가지도자들은 “인구증가가 경제성장을 잡아먹는다(Population growth is eating up economic growth).”는 주장을 했다. 사람에 대해서는 인건비, 교육비, 노무비 등의 비용으로만 생각했다. 한편에서는 국부자원으로 즉 인력자원, 혹은 고급인력이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지도자들은 알래스카 휘티어(Whittier, Alaska)에 있는 ‘안톤 앤더슨 터널(Anton Anderson Tunnel)’에서 지혜를 얻었다. 즉 기차와 버스가 서로 먼저 통행하고자 할 때 기차부터 통과시키는 것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지방자치, 각종 복지, 소득재분배, 노사인권문제 등은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체를 뒤로 미루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하지만 뒤늦게 “태양이 더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 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출산장려책을 실시했다. 금년도까지의 통계를 보면 17년간 360조 원을 투입하여 줄기차게 출산장려를 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기는커녕 바닥 모르고 내려가고 있다.” 최근 지성의 상아탑 대학에서도 벚꽃 엔딩(Cherry-Blossom Ending)을 준비하고 있다. 즉 벚꽃 피는 순서대로 제주도 ▷영남 ▷호남 ▷충청 ▷서울로 대학생도 줄고. 대학도 사라진다. 그렇게도 애지중지로 키웠던 경제적 파이도 쪼그라졌다. 당장 일할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2060년에는 900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니 이미 2016년에도 세칭 3D 업계에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2,232년간 로마역사 속에서, 출산기피 현상이 왜 촉발되었나?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던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상황에 당면했다. 그는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07~1794)이 1776년에서 1789년까지 출간한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시리즈 6권을 모두 다 읽었다. 그리고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왜 로마제국쇠망사라고? i) 로마제국은 지구촌에서 2,232(BC 753~AD 1479)년이란 최장기간의 대제국으로 온갖 문제를 해결하였다. 난간을 뚫고 나간 지혜가 있었다. ii) 특히 1895년 처칠이 12살 때 재무장관을 역임한 아버지가 손편지까지 끼워, 기번(Gibbon)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아들에게 선물했다. 아버지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한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곁에 놓고 읽었다.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로마제국 쇠망사’를 훑어본다면, 10년 이상 장기 전쟁, 연속되는 대기근, 빈번한 노예정책 변경으로 인해 로마제국에서도 ‘저출산 경향’이 한때 잠깐 혹은 몇세기 동안 나타났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로마제국 역사에서 공화정 말기와 제국초기에 사회적으로 낮은 출산율에 시달렸던 적이 상당히 많았다. BC18년 아우구스투스(Gaius Julius Caesar Augustus) 황제 때 미혼자와 자녀가 없는 사람을 처벌해 출산을 높이려는 취지로 ‘결혼 명령에 관한 줄리아 법률(lex Iulia de maritandis ordinibus)’을 제정했다. AD 9년에 ‘결혼장려법(Lex Papia Poppaea)’으로 보완했다. 이들 법안이 존재했다는 그 자체만 봐도 ‘무자식 상팔자’라는 사회적 통념이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지속됐음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BC 44년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BC 100~BC 44)가 암살당하자. 그의 유언장에 따라 조카였다가 양자가 돤 아우구스투스가 상속을 받았다. 상속받은 아우구스투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BC 63~AD 14)는 초대황제(Emperor Augustus)가 되었다. 그때 로마제국에서 비로소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다. 일본 역사소설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가 쓴 ‘로마인의 이야기(2권)’에서 “로마제국 멸망의 결정타는 저출산(Low birth rate was the final blow to the fall of the Roman Empire)”이라고 꼭 집어 말했다. 즉 “출산 감소를 방치한 나라치고 부흥한 역사적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는 선대 역사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로마는 정복사업을 통해 대규모 노예를 공급했다. “로마제국의 원동력은 노예들의 피에서 나온다(Impulsio Romani imperii a sanguine servorum venit).” 모든 지도자가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또 그렇게 외쳤다. 그런 말을 했던 그들은 모든 정복이 끝나고부터 몰락한 것이다. i) 대규모 노예공급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ii) 마르지 않는 샘물로 알았던 로마제국의 재정 곳간은 바닥을 내보였다. iii) 귀족이란 지배세력들은 누구보다 먼저 복지수혜를 선점했다. 심지어 독점화(獨占化)에 골몰했다.

로마제국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급변했다. i) 부담할 재정력은 날로 쇠약해졌다. ii) 목욕탕과 포도주에 귀족이 몰입되었다. iii) 화려한 퇴폐적 성문화에 젖었고,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iv) 로마제국은 더욱 나락으로 나가 떨어졌다. 즉 영토팽창 ▷노예공급 ▷경제성장 ▷복지 강화의 연결고리가 하나씩 망가졌다. 여기에다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은 지배계급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였다. 이런 망국의 징조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출산 기피였다. 저출산으로 로마는 불타올랐다.
 

 
글·그림=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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