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쓰레기더미 위에 핀 줄장미
[달구벌 아침] 쓰레기더미 위에 핀 줄장미
  • 승인 2024.05.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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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오월, 달빛의 온기가 초록을 데운다. 가로등 불빛 어둠을 밝히고 선 저녁의 거리로 나선다. 산책이다.
글을 쓰다 막히거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생각이 멈춰 서거나 뒤척일 때 쓸데없는 잡생각이 머릿속을 헤적일 때도 밖으로 나가 걷는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잡함을 하나씩 떼어 내 버리거나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찾을 때까지 거울을 닦듯 걷고 또 걷는다. 걷다 보면 계절과 마음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자극들이 오감을 일깨워준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산책'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는 오월의 신록 앞에 서 있다. 줄 장미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걷다가 담벼락 가장자리, 대형 쓰레기봉투 여러 자루를 만났다. 하나같이 전봇대에 기대선 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절취선을 넘어 봉투 위에 봉투 하나씩 더 덧댄 채 돌탑 쌓듯 쌓여 있다. 언제 무너지거나 쓰러질지 모를 만큼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 선 위는 봉투를 묶기 위한 부분입니다."라고 쓰인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봉투와 봉투 사이 몇 겹인지도 모를 누런 테이프를 숨 쉴 구멍 한곳 없이 칭칭 감아 놓았다.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들어 올릴까. 문득 걱정이 앞선다. 친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남편일 수도 있는 가장의 모습이 쓰레기 더미 위로 바람인 듯 휙, 스쳐 지나간다.
무단투기 방지를 위해 매달아 놓은 몰래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전혀 개의치 않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수건돌리기 하듯 전봇대를 감싸고 빙 둘러앉은 꽃밭의 피다 만 꽃들이 오물을 덮어쓴 채 시들어 간다. 꽃밭을 일구고 가꾼 손길이 무색해 보인다. 비닐을 뚫고 나온 감자 싹이 보이고 수박이며 참외, 오이 껍질 등등 음식물쓰레기와 한데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문드러져 썩어간다. 주변엔 온통 파리가 들끓는다. 줄지어 선 장미에게선 오히려 쓰레기 냄새 짙게 뱄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마당부터 쓴다. 그다음엔 방마다 밤새 가득 차오른 쓰레기통 속 쓰레기를 비운다. 오랜 시간 거르지 않고 실천해 온 나만의 아침 루틴이다. 일회용품이 늘어날수록 몇 해 사이 몇십 배, 아니 몇백 배가 늘어난 것 같다. 매일매일 거두고 비우지 않으면 집안은 온통 쓰레기장이 되기 십상일 것만 같아 일부러 시간을 투자하고 애써 부지런 떨어보는 것이다.
내 집 앞은 내가 쓸고 가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내 집 앞의 쓰레기조차 축구 경기하듯 남의 집 골대로 슬쩍 밀어 넣는 사람을 자주 접한다. '나 하나쯤이야'라며 제대로 묶지도 않은 채 내다 버린 쓰레기가 결국 자책골이 되어 그들의 코나 입으로, 양심을 파고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까운 맘이 들다가도 '너나 잘하세요!' 삿대질하던 손가락을 나에게로 돌려세운다. 그마저도 내려놓고 만다.
쓰레기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배설물과 같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 있듯 치우는 사람이 열이라도 어지르는 사람 하나를 따라잡긴 어렵다. 오랜 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이 든다. 나 역시 분리수거를 할 때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다. 그런 나를 보고 '대충 좀 하라며 입을 대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쪽을 택한다. 분리수거는 단순한 분리와 수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마음 닦기의 수행 과정이라는 것을 애써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불현 듯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오월, 낮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오르는 '한여름' 같은 봄날이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무언가 내 어깨를 툭 친다. 피다 만 감꽃과 부러진 나뭇가지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쓰레기였다. '뭐지?' 하며 고개를 돌리다 옆집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 감꽃이 우리 집 마당으로 떨어졌는데 그 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거라…."
미안하단 한마디 말도 없이 변명만 늘어놓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만다. 돌아선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멍하니 석고상처럼 서 있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녀가 무단 투기한 쓰레기를 덮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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