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하남 토성
[좋은 시를 찾아서] 하남 토성
  • 승인 2024.05.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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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 시인

그 토성土城은

토막 처진 백제의 역사처럼

잘려 떨어진 발가락의 한 마디 같았다

전해지지 못한 소식을 기다리는

그때의 위례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孤兒 같았다

아스팔트 도로 자락으로

그 토막의 일부마저 내어준 土城의 비탈은

엄지발가락 마디 위에서 버티고 서있는

몇 개의 꼬부라진 털처럼

뒤틀려 죽어가는 소나무들 사이로

오랜 가뭄에 뿌옇게 빛이 바랜

저녁 햇살을 받아 안고 있었다

◇최영규= 1996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침시집’, ‘나를 오른다’, ‘크레바스’, ‘설산 아래에 서서. 한국시문학상, 경기문학상, 바움작품상, 김구용시문학상. 시천지 동인, 서사시문학 동인.

<해설> 역사의 그늘로 밀려난 토성을 잘려 떨어진 발가락의 한 마디로 보는 시인의 눈은 예리하다. 전해지지 못한 소식을 기다리는 고아孤兒 같았다는 또 어떠한가? 土城의 비탈은 엄지발가락 마디 위에서 버티고 서 있는 몇 개의 꼬부라진 털? 이라니 시인의 비유는 인체의 어느 부위를 건드리면서 그 절실함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으려는 어떤 시도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읽힌다. 그런 시인에게 토성은 현실이며 오랜 가뭄에 뿌옇게 빛이 바랜 저녁 햇살을 받아 안는 심정의 한 단면을 한 폭 풍경으로 에둘러 그려놓고 있다. 한때의 위례성의 영화가 허물어져 감에 대한 자신의 연민을 빗댐으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현실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로 읽힌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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