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산보 중 만난 은은한 찔레꽃, 새순 따먹던 추억 ‘새록새록’
[호일당에서] 산보 중 만난 은은한 찔레꽃, 새순 따먹던 추억 ‘새록새록’
  • 윤덕우
  • 승인 2024.05.21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찔레
조심하지 않으면 가시에 찔릴 수도
어린 시절에 새순·꽃 자주 따 먹어
겨울이면 열매를 이용해 꿩 잡기도
최근 상주 계곡서 본 찔레꽃 인상적
찔레꽃240519
고향 시골 밭둑(경북 칠곡군 동면면 기성리)에 핀 찔레꽃.

5월 시골 밭둑 곳곳에 피어나 달콤한 향기를 선사해온 하얀 찔레꽃. 고향 매실 밭에 갈 때마다 주변 신록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기운에 더해 전해오는 이 찔레꽃 향기에 저절로 콧구멍이 최대한 커지곤 했다. 이런 찔레꽃의 시절도 막바지인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는 장미꽃은 아직도 여전히 한창 피어나고 있다. 장미와 찔레는 같은 ‘종족’에 속하는 식물이다.

찔레는 가시가 있는, 조심하지 않으면 가시에 찔리기 쉬운 성가신 식물이다. 어린 시절, 찔레는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가장 많이 가까이 다가갔던 나무에 속한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찔레에 다가간 것은 그 새순을 꺾기 위해서였다. 새순과 그 꽃을 자주 따 먹던 찔레.

지금은 새순을 따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다. 꽃이 피기 전 초봄에 굵게 올라오는 새순 줄기는 맛있는 먹을거리였다. 연한 새순을 꺾어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단맛이 약간 있으면서 즙이 많고 질감이 좋다. 약간 씁쓸하면서 달콤한 맛이 있고 아삭아삭한데,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친구들과 굵은 찔레 새순이 있는 곳을 찾아 큰 새순을 꺾게 되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찔레 새순은 뿌리 근처에서 솟아난 것이 위쪽 줄기에서 나온 순보다 더 굵다. 이 새순의 잎은 떼고 껍질을 벗겨서 먹는다. 많이 보드라우면 껍질 채로 먹기도 했다. 찔레 새순은 칡뿌리, 송기(소나무 줄기 속껍질), 진달래꽃과 더불어 봄날 시골의 먹을거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먹으면 된다. 요즘은 장미꽃을 더 흔하게 접하지만,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찔레꽃이 흔했다. 장미꽃은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찔레는 새순뿐만 아니라, 열매도 요긴하게 쓰였다. 겨울이면 찔레나무 열매를 이용해서 새를 잡기도 했는데, 주로 꿩을 잡는데 사용했다. 빨갛게 익은 찔레 열매의 씨를 발라내고 그 안에 독극물(싸이나)을 넣어 꿩이 자주 오는 곳에 두면 꿩이 먹고 그 주위에서 죽게 된다.

최근 만난 찔레꽃 중에는 지난해 5월 이맘때 상주시 낙동면의 한 계곡에서 본 찔레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시 지인들과 상주시 낙동면 승곡마을에 있는 승곡체험휴양마을에 머물며 농촌체험을 했었다. 이 휴양마을(펜션)은 계곡 가에 있는데, 갑장산의 이 계곡은 상주를 대표하던 선비 검간(黔澗) 조정(1555~1636)이 청소년기와 만년에 공부하고 소요음영하던 곳이다. 후학들은 조정의 학덕을 기려 이 계곡 가의 큰 바위에 ‘검간조선생장구지소’라는 글씨를 새겼고, 1924년에는 옥류정(玉流亭)을 건립했다.

1박 후 쾌청한 아침에 이 계곡을 산보했다. 옥류정을 거쳐 글씨가 새겨진 바위로 올라가다가 길옆에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비탈을 만났다. 생기 넘치는 신록 속에 칡넝쿨과 어우러진 흰 찔레꽃들이 향기를 뿜어내는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뿌리·나무 약으로…꽃은 갈증 해소
백난아·이연실 노래로도 사랑 받아
찔레꽃 향기는 변함이 없어도…
요즘 젊은이 옛시절 정서 공감할까

◇찔레 이야기

찔레나무는 장미과의 낙엽성 관목이다. 찔레꽃이라는 말이 ‘가시(찔레) 달린 꽃’을 뜻한다고 한다. 5월에 개화하는 꽃은 지름 2㎝ 정도의 작은 꽃으로, 흰색 꽃잎(노란 꽃술)이 대부분이다. 연한 붉은색도 간혹 보인다. 둥근 열매는 10월에 붉게 익는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자생한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 야산이나 들녘에 풍성하게 피어난 하얀 찔레꽃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에 은은한 향기가 더해져 누구나 좋아하게 되는 정겨운 꽃이다.

찔레나무는 한방에서는 약으로 사용한다. 꽃은 ‘장미화(薔薇花)’라 부르는데, 잘 말려 달여 먹으면 갈증을 해소하고 말라리아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뿌리는 이질, 당뇨, 관절염 같은 증세에 복용할 수 있다.

찔레와 관련해 이런 전설이 전하고 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에서는 해마다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쳐야만 했다. 그 시절 어느 산골마을에 찔레와 달래라는 가난한 자매가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자매는 아버지의 약 값을 구하려고 나물과 약초 등을 캐러 나갔다가 관원들 눈에 띄어 잡혔다. 자매는 사정 이야기를 털어 놓았고, 언니인 찔레가 원나라에 가게 됐다. 다행히 좋은 주인을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지냈다. 하지만 찔레는 동생 달래와 병든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밤낮 없는 고향 생각에 몸도 마음도 약해진 찔레를 본 주인은 결국 찔레에게 고향에 다녀오도록 허락했다.

찔레는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오두막은 간 곳 없고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찔레가 끌려간 뒤 아버지는 감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그것을 본 달래는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간 뒤로 소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찔레는 달래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던 날, 산길에 쓰러진 찔레는 눈에 덮여 외롭게 죽었다. 봄이 되자 찔레가 쓰러진 산길에 하얀 꽃이 피어났다. 그 후 찔레가 아버지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다. 지금도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피는 것은 찔레가 그렇게 곳곳에 돌아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찔레의 가시는 애태우던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찔레의 고운 마음은 눈처럼 새하얀 꽃이 되고, 찔레의 서러운 운명은 빨간 열매가 되었다고도 한다.

◇기성세대 정서 담은 대중가요 ‘찔레꽃’

소박하면서 향기로운 찔레꽃은 매우 흔한데다 가난한 시절에는 허기를 달래는 먹을거리도 되었다. 이런 찔레꽃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기에 적절한 꽃이었기에 대중가요의 소재로도 애용되었다.

한때 국민가요로 불릴 정도로 많이 불렸던 백난아의 ‘찔레꽃’(1941년 발표)을 비롯해 이연실의 ‘찔레꽃’(1972년 발표), 장사익의 ‘찔레꽃’(1995년 발표)은 모두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그 가사의 일부를 차례대로 소개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백난아 노래>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이연실 노래>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장사익 노래>

찔레와 관련된 옛 추억을 떠올리고, 대중가요의 가사를 보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새삼 확인한다. 찔레꽃의 향기는 변함없어도, 이런 노래 가사에 담긴 정서는 요즘의 젊은이들 이후세대는 공감하기 어려운, 가난했던 지난 시절 사람들의 정서로 그칠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등록일 : 2023.03.17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