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양심이 바로 선 사회
[수요칼럼] 양심이 바로 선 사회
  • 승인 2024.05.21 21: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양심(良心)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을 말한다. 흔히들 자기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나쁜 행동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양심은 옳고 그름에 관한 각 개인의 소신을 말하기 때문에 양심은 주관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양심은 선량한 마음이나 착한 마음을 가리킨다. 흔히 '양심에 털났다'는 말 하는 것은 아주 염치없고 뻔뻔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반면 양심의 자유라는 말은 사상이나 신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치적 혹은 종교적 영역에서 종종 사용된다.



이러한 양심의 근원은 서양과 동양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에서 양심은 그리스로마신화를 배경으로 한 소포클레스의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안티고네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안티고네의 두 오빠인 플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위를 놓고 싸우다 둘 다 죽고, 그녀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조국 테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에테오클레스에게만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다. 반면 다른 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내전을 일으킨 플리네이케스는 매국노라며 그 시신을 짐승의 밥이 되도록 길바닥에 방치한 후 그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겠다고 명령한다.


안티고네는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신들이 정해 놓은 불문율에 위반되므로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크레온 왕의 명을 어기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묻어준다. 이에 분노한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체포하여 굶어 죽도록 산 채로 무덤에 감금시켰으며, 감금된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티고네는 신이 정해 놓은 자연법과 인간이 결정한 실정법 사이에 충돌이 있을 경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오늘날 이런 문제는 우리 삶 속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동양에서 양심의 근원은 맹자로부터 찾을 수 있다. 맹자는 인간은 본래 인의(仁義)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양심이라 했다. 양은 본래적이다와 선하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은 본래적이고 선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는 바로 양심(良心)이며, 이것이 바로 성선설의 근거라고 한다. 어린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한다면 누구나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면서 또한 양심을 가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심의 기능은 무엇인가? 양심은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상대하는 방법도 가르치다. 우리가 만나는 이웃을 대하는 양심과 사회를 대하는 양심이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양심이 추상화 되거나 감상적으로 변하고 제도화되며, 또한 비인간적인 정치권위로부터 강요받는다면 양심이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 사회적 양심을 요란스럽게 이야기할수록 개인적인 의무와 이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신뢰받기 힘들다.
근대에는 양심의 의미가 축소되는 경우가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은 '양심은 계몽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적 양심이라는 오래된 도덕적 도구를 포기하고 고통과 쾌락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도입한 결과 우리 사회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양심, 도덕, 정의라는 개인적 신념이 지배받는다면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이 양심과 도덕에 무지하며 감각적 욕구에만 매달리는 사회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도 나쁜 사회라 한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는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된 사회적 규범이 아닐까 한다. 사회적 규범에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양심과 지혜가 녹아 있다. 누군가 사회 공동체의 질서를 침해할 경우 법과 제도라는 합법적인 강제력이 동원된다. 그러나 법을 앞세우기 이전에는 먼저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라고 생각한다. 무릇 정치는 상호 인정과 평등, 그리고 타협 없이는 불가능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정치가 실종된지 오래다. 제22대 의회를 구성하기 전부터 특검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탄핵이 언급되고 있다. 힘의 논리로 헤게모니 싸음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나쁜 사회의 표본이다. 법률적인 문제는 두고서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이 국회의원 당선된 것을 도덕적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법률적인 판단 이전에 개인의 양심, 그리고 사회적 규범에 맞게 행동을 했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