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외할아버지 선생님
[달구벌아침] 외할아버지 선생님
  • 승인 2024.05.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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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복현중 교사
발단은 4세 미만의 영유아가 주로 걸린다는 수족구병이었다.

최근 급격한 성장으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첫째가 수족구병에 걸렸다. 전염병이라 격리가 필요한데 동생들이 있는 집에서는 격리가 어려울 거 같아 첫째 혼자 외갓집으로 가게 되었다. 첫째가 친정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몇몇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셨다. 사교육을 멀리하려는 소신만 가지고 아무런 액션은 취하지 않던 엄마 탓에, 첫째는 학교에서 부진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학년까지는 간간이 풀던 학습지와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수업 내용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지만, 3학년부터 시작하는 영어는 특히나 어려웠다. 7, 8살부터 영어를 배우고 온 아이들이 절반 이상인 학급에서 알파벳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첫째는 단연 뒤처지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가 알파벳조차 쓰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현실을 외면하며 ‘수업이 시작하면 하게 될 거야. 알아서 잘 따라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영어 수업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주말이면 영어 교과서를 가지고 와서 엄마랑 함께 보자고 해도, 첫째는 매번 잊어버렸다고 하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학교가 집 바로 옆이라 마음만 먹으면 함께 가서 가지고 올 수도 있었음에도, 나도 바쁜 현실을 핑계 삼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나중에 “왜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하니, “엄마는 바쁘잖아…”라고 대답했다. 매번 아이 앞에서 피곤해하고 바쁜 척 움직이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주말마다 첫째를 데리고 가 공부를 봐주시기로 했다. 최대한 부모님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오랜 기간 휴직하며 직접 양육하는 길을 택했는데…. 결국 부모님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0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이제 첫 손주의 선생님이 되셨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손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봐주시며, 우리 남매의 그 시절을 회상하실 듯하다. 이럴 땐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정을 지었겠구나…. 반대로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부모님을 돌아본다. 힘드셨겠다, 쉽지 않으셨겠다. 사는 게 바쁜 와중에 아이 공부도 봐줘야 하고 집도 돌봐야 하고 아이의 표정, 커가는 모습을 자세히, 예쁘게 여기며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지 않으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꿋꿋하게 잘 버텨주셨구나. 나의 기댈 곳이 되어 주셨구나.

한편으론,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 일을 하고 돌아와 집을 돌보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시겠지.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하듯, 어려운 일은 대신 해주고 싶고, 힘든 감정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 힘들다는 걸 당신들의 경험으로 아는 길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이시겠지.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내 품에서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거 같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지금부터 조금씩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을 보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거 같다.

친정아빠는 많은 감정을 안고, ‘외할아버지 선생님’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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