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가 죽었다'...관음증과 관종, 두 비호감의 진실게임
영화 '그녀가 죽었다'...관음증과 관종, 두 비호감의 진실게임
  • 배수경
  • 승인 2024.05.23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인 관찰하는 취미 가진 정태
거짓투성이 삶 과시하는 소라
우연히 소라의 시체 발견한 정태
평온했던 그의 인생도 흔들려
그녀가죽었다4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현대인의 삶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각보다 많이 노출되고 기록된다. 최근 사회면을 연일 장식하고 있는 모 가수의 뺑소니 교통사고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들통이 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어딜 가나 자리잡고 있는 CCTV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기록된 데이터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대놓고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면? 심지어 내가 모르는 사이 우리집까지 들어와서 살펴보고 간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는 다른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동네에서 부동산중개사무실을 열고 있는 구정태(변요한)는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꽤나 평판이 좋다.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는 남들과 조금 다른 취미가 있다.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 그는 이러한 관심을 ‘관찰’이라 부른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이의 카톡창을 슬쩍 훔쳐보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정태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해보이는 인상으로 천연덕스럽게 “나쁜 짓은 절대 안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 설득당해 자칫 그의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과연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나쁜 짓이 아닐까? 그는 그냥 보기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맡겨놓은 열쇠를 가지고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둘러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주인이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을 훔쳐 사진을 찍고 마치 전리품처럼 자신만의 콜렉션을 만들어간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어느날 그의 레이더에 한 여자가 포착된다.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먹으면서 비건샐러드를 먹고 있는 척 SNS에 사진을 올리는 여자는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다.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이 취미인 남자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을 추구하는 여자의 만남이다. 물론 로맨스는 아니다. 이때부터 집착같은 관찰이 시작된다. 관찰 152일이 되던 날, 정태는 흉기에 찔린 듯 피범벅이 되어 소파에 누워있는 한소라(신혜선)를 발견한다. 꼼짝없이 살인용의자로 몰릴 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신고부터 하겠지만 그는 무단 주거침입이라는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그곳을 허둥지둥 빠져나온다. 그러나 마치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관찰하는 이가 있었던 모양. 사무실로 날아든 편지 한통과 함께 나름 평온했던 그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사전정보 없이 보러 가는 것이 좋으니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이는 이쯤에서 읽기를 멈추는 걸 추천한다.

영화는 ‘관음증’과 ‘관종’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관음증을 가진 정태의 시선에서, 중반부터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야만 하는 인플루언서 소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기를 바랄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SNS다. 인스타그램은 ‘세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공유한다’(Capturing and sharing the world’s moments)라는 모토로 탄생했다. 순간을 포착해 공유하는 순간 사람들은 좋아요와 구독, 댓글 등으로 반응을 한다. 점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진 이들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들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쓸 수 밖에 없다.

명품을 걸치고 핫플을 가는 등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던 소라는 어느날부터 유기동물 임시보호소에서 봉사를 하고 동물 입양도 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인물로 변신을 한다. 그렇지만 실제 그녀의 삶은 거짓과 위선투성이다. 잘 포장된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소라는 못할 게 없다. 사람과 동물도 그녀에게는 도구일 뿐이다. 그녀에게는 생명도 그저 하찮기만 하다.

관찰이라 포장된 ‘관음증’에 중독된 남자와 거짓투성이의 삶을 과시하는데 빠져있는 여자. 그들 주변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일반적인 인간관계는 볼 수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태와 소라 둘 다 범죄자다. 그렇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은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한다. 한 사람은 ‘나쁜 짓은 절대 안한다’고, 또 한 사람은 ‘나는 내가 제일 불쌍해’라고.
 

변요한·신혜선 두 배우의 열연
이야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들어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 부담 적어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여운 남아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힘이다. 영화 초반에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타켓’에서 범죄자의 타겟이 되어 불안에 떠는 수현과 겹쳐보이던 신혜선은 중반 이후부터는 완전히 달라져 광기어린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정태 역의 변요한이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할때는 마치 피해자처럼 여겨져서 자연스레 관객들의 응원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가 피해자이면서 범죄자라는 사실이다. 자칫 그냥 지나칠뻔 한 이 사실을 영화 말미 오영주(이엘) 형사가 상기시켜준다.

“구정태 씨. 당신 피해자 아닙니다. 범죄자예요. 스토커”

죄의식 없이 ‘잘 쌓아둔 평판은 어떻게든 회복된다’며 자신을 합리화하던 그가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빛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그의 개과천선을 기대해봐도 될까.

요즘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도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눈으로 보는 것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아닐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져온다.

102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이 편한 감상을 돕는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그 여운은 제법 길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등록일 : 2023.03.17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