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급격한 의대 증원이 초래할 의대 교육의 질 하락
[의료칼럼] 급격한 의대 증원이 초래할 의대 교육의 질 하락
  • 승인 2024.05.2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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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선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어울리고 함께 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지난 85년 동안 하버드에서 만 19세였던 724명의 삶을 추적·관찰한 결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결정적인 요인은 재산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였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관계가 깨어지면 공감과 지지와 협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삶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더 외로워졌다.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국가가 담당해야 할 전염병으로 보고 ‘외로움 담당’ 장관이 생겼고, 일본에서도 자살자와 고독사가 늘어 ‘고독·고립 담당’ 장관이 생겼다.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 개피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고 하는데, 2022년 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도 1인 가구가 전체의 34.5%로 삼분의 일을 넘었고 인구의 87.7%가 외롭다고 했다.

외로운 사람은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의사가 될 터이니 의사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관계를 잘 맺고 생활을 변화시켜 나가면서 치료해야 하는 전문가가 바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위해 의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친밀한 유대 관계,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는 뜻인 ‘라포(rapport)’라고 한다. 의대 실습은 라포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눈을 맞추고 온몸으로 환자가 겪는 고통을 공감하면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은 선배 의사와의 관계, 동료와의 협력 관계, 지도 감독을 통한 환자와의 관계 맺는 경험을 통해서다.

그런데 정부가 관계를 깨뜨리고 있다. 올해 2월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내년부터 갑자기 65% 증원한다고 정부가 발표하였다.

전 국민 건강 보험을 실시하는 우리나라는 정부와 의사의 협력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 전염병 시기 동안 의사들은 정부와 함께 노력해 왔다. 지금의 의료 발전도 그러한 협력 관계의 결과이다. 정부와 의사의 신뢰 관계가 깨어졌다.

정부는 일방적 증원 발표로 의사와 국민 사이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갈라놨다.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서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묵묵히 수련하던 전공의들이 더 이상 국민과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했다. 정말 밥그릇 싸움이라면 왜 정년퇴임을 한 노교수와 의대 교수도 한목소리를 내겠는가?

의대생 교육과 전문의 수련 체계는 수십 년 동안 고도의 심사를 통해 개선 되어왔고 그 결과 의료의 질이 높아졌다. 그런데 공든 수련 시스템이 정부에 의해 고작 몇 달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숫자만 늘린다고 생명을 책임지는 능력 있는 의사가 늘어나지 않는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려면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믿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전문가가 되는데 십 년 이상이 걸리는 현실에서 숫자가 아니라 외로운 국민에게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질적인 조건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런 교육을 할 수 있는 의대 교수 천 명이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나겠는가?

최선을 다해 생명을 치료한 의사가 범죄자 취급이 아니라 더 인정받고 지금처럼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인 의료 시스템 개선만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놓은 채 외롭게 병원 밖에 있는 젊은 의사들이 다시금 생명을 구하는 데 뜻을 두게 할 것이다.

외로운 의사는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 외로운 교수는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가르칠 수 없다. 책임지려는 의사 없이는 환자는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잘 맺도록 하는 역할을 다시금 찾아 국민을 외롭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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