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예타면제
[데스크칼럼] 예타면제
  • 승인 2024.05.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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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정경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를 대폭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R&D 예산을 5조원이나 삭감한 정부가 예타면제를 말하니 의아해 하고 있다. 예타 완화나 선별적 면제는 정부 차원에서 거론된 바 있지만 R&D 분야에 한해 예타를 전면 폐지하기로 한 것은 오히려 뜬금 없다는 것이다. 현재 총사업비가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인 재정사업을 진행하려면 수개월에 걸친 예타를 거쳐야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에 발맞춰 R&D 예타 규제를 완화하라는 요구를 해 왔는데 갑자기 예타면제가 튀어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빚만 잔뜩 물려받은 소년 가장과 같이 답답한 심정이 들 때가 있다”며 “앞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대통령이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을 처음 거론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수십년 뒤로 후진시켰다는 비난을 샀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타면제라는 정반대의 카드를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연구개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한 것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우주, 양자 등 혁신기술 개발에 예산을 빠르게 투입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타는 사업을 정밀하게 조율하고 낭비 요소를 걷어내는 순기능도 있는데 예타 전면폐지라니 당황스럽다. 예타를 전면 폐지하면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지출의 초기 단계부터 최종결정단계까지 모두 관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R&D 사업 기획이 외부의 평가를 받지 않고 깜깜이로 운영되면 정부가 자유롭게 예산을 짤 수 있는 만큼 특정 분야나 단체가 예산에 끼어드는 또다른 ‘카르텔’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해민 국회의원 당선자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예타면제에 이같은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 기재부가 예산편성의 주도권을 가져가기위해 예타면제라는 수를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예산의 전문성을 지키기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예타심사권을 줬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예타 심사권이 폐지되면 편성심의부터 기재부가 정부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편성권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예산이 기재부의 결정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 전문가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기재부에 줄을 서서 예산을 따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각 지방정부는 예산을 따기위해 기재부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돼지 여물통 정치’라는 말이 있다. 지방분권학자들은 ‘세입을 중앙정부가 틀어쥔 채 배분하는 정치’를 돼지여물통 정치(정부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다투는 모습이 마치 돼지들이 여물통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라고 부른다. R&D 예산도 돼지 여물통처럼 서로 받아먹기위해 싸울지 모른다. 이해민의원이 이같은 우려를 제기하자 전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과학자들이 “사실을 얘기해 줘서 고맙다.”며 연락해 왔다고 한다. 지난해 예산 삭감을 결정한 것이나 올해 예타 전면폐지를 지시한 것이나 둘다 결국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예타폐지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심사 절차를 거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라인 사태도 논란이다. R&D 예산 삭감이후 우리나라 AI 기술자들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다. AI 데이터 사업을 하려면 플랫폼인 라인을 팔아서는 안되는데도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으며 ‘강 건너 불 구경’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AI 데이터 사업에 필수적인 라인을 손에 넣어 취약했던 분야인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전세계 반도체공장, AI 빅테크 기업의 투자가 일본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는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외국기업 탄압에 대해 주한 일본대사 초치 등의 항의는 커녕 일본 총무성을 도와 한국에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 섭외까지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윤대통령도 한일중 회담에서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며, 한일 외교 관계와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개인 기업의 일에 정부가 끼어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의 상황인식이 거꾸로 가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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