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언 개인전 …고도아트갤러리 19일 개막
장병언 개인전 …고도아트갤러리 19일 개막
  • 황인옥
  • 승인 2024.06.0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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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탐구하고 변형했더니…떠오른 독특한 미감
동서양의 결합 ‘카페 풍경’
수묵분채와 아크릴 물감 혼용
과감한 여백과 시원시원한 선
원근법 없는 절제된 형상 특징
정신적 기반 ‘中 북송 산수화’
기괴한 분위기에 마음 빼앗겨
회화 4점 분석하고 모방·체득
고대 명필가들 서법까지 익혀
장병언이임모한방범관설경한림도
장병언이 임모한 방범관설경한림도(倣范寬도雪景寒林圖)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미술학도라면 고전 공부는 필수 관문이지만 전업 작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연구하고, 제시하며, 평가 받는 것이 응당 취해야 할 태도다. 하지만 한국화를 전공한 장병언 작가는 20여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을 고전 수묵화 연구에 열정을 바쳤다. 기본기를 연마하는 과정에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당시 독자적인 화풍에 몰두하기보다 천년 전의 고전 산수 연구에 매진하는 그에게 혹자는“옛날 그림을 베끼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뜻한 바가 있었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시대 미술 또는 현대미술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보았고, 자신이 쫓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가 당시 갖추고 싶었던 자질은 절정을 구가했던 고전 산수화의 농익은 미학적 원리였다.

고전에 심취했던 당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보다 “향후 새로운 예술 세계를 제시할 수 있는 동력을 끊임없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느냐?”였다. 기존의 미술에 파열음을 내며 새로운 미술 세계를 제시하기 위해 마르지 않는 생산력이 필요했고, 그는 그 기반으로 넓은 경험의 스펙트럼을 꼽았다. 그것이 수묵화의 고전들을 탐독하고, 임모하는 것이었다.

“경험 쌓기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더라도 그로 인해 축적된 역량이 오히려 현대적인 미감의 한국화를 제시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생각은 “어제의 것을 모방하나, 천 년 전의 것을 모방하나 본질은 같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 운명같이 고전 수묵화에 대해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고, 나 스스로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했을 뿐이다. 천년, 아니 그 이상의 생명력을 지녀온 선배들의 예술작품을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가 도달해야 했던 고전은 증국 북송 시대의 산수화였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자연스럽게 수묵화에 관심을 두던 시기에 만난 것이 북송대의 산수였다. 특히 북송 산수 속 나무에 유독 눈이 갔다. 그 나무들에는 하나같이 괴기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처음 봤던 그림이 이성(李成)의 ‘한강조정도(寒江釣艇도)’였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가 북송대 산수화에 끌린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심장병을 앓아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부친은 아들이 더 강해지기를 바랐다. 부친은 아들의 손을 잡고 산을 찾곤 했다. 아버지에 손에 이끌려 등산하며 어린 장병언의 눈에 들어온 숲속 풍경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섬뜩하고 기괴했다”는 것이 그가 숲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그가 본 숲 속 풍경은 멀쩡해 보이는 나뭇가지는 땅으로 곤두박질쳐졌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능구렁이 같은 나무뿌리, 자동차만 한 나무뿌리가 뽑힌 것도 모자라 하늘을 보고 드러누워 있었다. 짧게 내린 소낙비와 함께 산을 오를 때면 계곡물은 종잡을 수 없이 불어서 온 천지 폭포수가 됐고, 우의를 입고 비를 맞으며 구름 속을 걷는다는 것이 결코 몽환적이거나 서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해가 서쪽 봉우리로 숨을 때쯤에는 산짐승이 아닌 요괴들이 출몰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북송대 산수화를 만나자 어린시절 보았던 숲의 기괴스러운 풍경이 겹쳐졌다. “북송 시대의 회화는 어린 시절 산에 오르며 보았던 장면과 너무나 닮아있었고, 매료돼 갔다.”

북송대 고전, 특히 ‘조춘도’를 보며 그것을 임모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북송대 회화를 충분히 경험하지 않고선 화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꼭 넘어가야 할 거대한 산맥”이라는 생각으로 북송대 회화 탐구를 시작했다. 북송대 회화를 파고든 시간이 꽤나 흘렀을 무렵, 불현 듯 북송대 대가들의 운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북송대 회화를 연구하게 되자 어디서 붓이 시작해서 어떻게 맺음을 했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4점 정도의 북송 회화를 스스로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북송대 회화의 필획이 지나간 궤적들을 분석하고, 옛 그림이 만들어지는 조형의 작동 원리를 ‘해석’해 내는 일에 집중했다. 마치 고대 언어를 분해해 직역하듯이, 옛 화가의 필법을 하나하나 모방하고 체득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했다. “창작의 고통은 모르겠으나, 모방의 고통은 생각보다 심했다”는 것이 당시 그의 심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배움을 얻을 처지도 아니었다. 오롯이 혼자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대학 시절 그토록 도달하고 싶었던 북송대의 첫 번째 그림인 ‘방범관설경한림도(倣范寬雪景寒林圖)’이 겨울을 지나 목련꽃이 만개할 무렵에 완성됐다. 이후 중국 남송대의 ‘방이당만학송풍도(倣李唐萬壑松風圖)’, 원, 명, 청 그리고 조선시대 회화와 도자기, 전통 문양, 중국화상전 등 동양고전 회화를 총망라해 살피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를 언급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서예다. 화가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적인 감각이지만 기술적인 측면도 그에 못지않다. 기술이 예술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기술을 염두에 두며 주목한 것이 서예였다. 일찍 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하곤 20대 초반에 자발적으로 서예에 입문했다. 서예가인 일사 석용진의 서실에서 서예를 시작했고, 꼬박 3년간 고대 명필가들의 서법을 익혔다. 소산 박대성을 찾아가 산수화에 대한 기본기도 다졌다.

창작을 위한 기반을 닦는데 20여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그의 독자적인 화풍들이 세상과 만났다. 그의 행보는 옛 것을 본받는 ‘법고(法古)’를 이루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창신(新)’의 길과 정확히 일치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그의 작품들은 전통회화와 현대회화를 두루 아울렀다.

장병언작-카페풍경시리즈
장병언 작 ‘카페 풍경’ 시리즈.

오는 19일 개막하는 고도아트갤러리에서의 그의 개인전에 소개될 ‘카페 풍경’시리즈는 그의 최근작이다. 일상 속 평화로운 카페 풍경을 그렸다. 시원하고 담대한 구성과 수묵분채와 아크릴 물감의 혼용을 특징으로 하는데, 묘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구도나 색감에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마저 넘나든다. 원근법을 배제하고, 색을 쓰되 흑백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과감하게 여백을 처리하는 등의 전통 회화의 요소들이 시원하면서도 감각적인 구도와 절제된 현대적인 형상미가 어우러진 결과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풍자한 작품 ‘모나리자’시리즈에선 날선 비판도 발견된다. 모나리자를 발가벗기거나, 얼굴에 수염을 그리거나, “과거에 얽매인 화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명말 청초 때 석도가 쓴 ‘화론’을 모나리자의 배경에 쓰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모나리자의 권위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모나리자야말로 권위주의의 끝판왕”이라고 강조한다. “미술계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엄청난 권위가 아닐 수 없다. 진짜 좋아해서 모나리자를 추켜세우기보다 유명하니까 봐야 된다는 식이다. 이런 인식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동양의 화선지에 동양 물감인 분채와 서양 물감인 아크릴 물감을 혼용하는 작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섬세함이다. 물감을 흡수하는 장지의 특성을 십분 살리기 위해 무엇을 분채에 흡수시키고 무엇을 아크릴 물감으로 드러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빛을 흡수하는 분채의 특성도 살려내야 했다. 조형적인 어법도 쉽지 않다. 서로 상반된 물성이지만 지극한 조화로 이끌어야 하는 과제도 주어진다. 그는 이 모든 요구들에 성실하게 대응한다.

“동서양의 물감을 혼용할 경우 물성에 대한 공부는 필수인데, 그것을 충분하게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독특한 미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고전 수묵산수와 서예를 합쳐 20여년 섭렵한 그의 부력은 선의 운용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대인의 일상이나 모나리자를 재해석하지만 선(線)적인 요소는 화면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대개는 시원시원한 서예적인 선(線)들의 기운으로 표현된다. “20여년간 선에 대한 운용을 공부했기 때문에 선에 대해 자유로운 것 같다. 서예를 기반으로 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지렛대로 새로운 창작을 모색하는 그가 중국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화가인 석도의 ‘석도화론’을 언급했다. “만약 내 그림이 그놈의 대가들의 그림을 꼭 닮았다고 하자! 그래봤자 그것은 그놈의 대가들이 먹고 난 찌꺼기 국물을 들이키는 꼴이니, 도대체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글귀였다.

그만큼 그에게 고전이 주는 의미는 크다.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찌꺼기라는 것을. 하지만 의미는 내가 부여하기 나름이다. 내게 고전은 인식의 도구이자 참고의 기준이었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모방, 변형, 창조’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나는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가? 참으로 그것이 궁금하다.” 장병언 개인전은 19일부터 7월 6일까지 고도아트갤러리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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