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조각들을 평면 속에 구현
할머니 영향 받아 ‘바느질 회화’
천 위에 물감 바르고 꽃·새 묶어
과거 경험·기억 지층처럼 쌓여
물감과 오브제 접점 찾기 20년
감상자도 과거 ‘그 곳’ 떠올릴 듯
전재은 작가는 캔버스 평면에 장소에 대한 사유를 시각화한다. 정확히 기억이나 경험, 문학과 시 속에 드러난 특정한 장소를 평면 위에 구현한다. 그에게 공간은 물리적인 장소성을 넘어선다. 삶의 흔적이 질펀하게 묻어있는 정서적인 장으로 인식된다. 특히 특정 장소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나 경험 또는 현재의 일상과 관련된 장소에 매료되며 작업의 소재로 소환한다. 그에게 장소는 곧 삶의 흔적과 연결된다.
“공간 속에 배어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평면에 구현하는 것이 저의 작업입니다.” 누구나 혼자만의 공간을 꿈꾼다. 번잡하게 살아 갈수록 혼자만의 은신처에 대한 갈증은 커져간다. 고요한 전원에 살아도 은신처에 대한 로망은 있다. 은신처는 삶의 긴장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비로소 편안해지는 혼자만의 은밀한 공간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그런 은신처를 가졌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장롱 속이나 다락, 그도 아니면 공원이나 뒷동산의 볕 좋은 장소에서 혼자만의 순수로 빠져들곤 했다.갤러리 CNK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재은 개인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A Language I’ve been reading since childhood)’에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작가의 은신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감상자와 작가와의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셈이다. 그가 평면 속에 녹여내고자 했던 것이 은신처 같은 편안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 공간들은 어린 시절 은신처럼 하나같이 순수하고 맑다. 유년시절 스케치북에 그렸던 풍경을 빼닮았다. 그의 순수한 화면에 무장해제 된다면, 감상자도 유년시절 그런 은신처를 가졌을 공산이 높다.
장소를 중심에 두고 작업하지만 그가 관심을 두는 장소는 따로 있다.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거나 위안을 받았던 장소들이다. 마치 은신처처럼 자신을 지탱해줄 것 같은 곳들이다. “‘장소에 대한 정서와 기억의 조각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구현해나가고 그것이 제게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지’는 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주제입니다.”
장소에 대한 기억이나 정서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여느 작가들과 그의 작업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재은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느질이다. 그는 천이라는 매체와 바느질을 회화에 접목한다. 일명 ‘바느질 회화’다. 작업은 사각 틀에 천을 끼우고 물감을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고, 화면에 만족할 만큼의 밀도감이 생기면 집, 꽃, 새, 소녀나 추상적인 형태의 바느질된 오브제들을 실과 천으로 단단하게 엮고 감침질이나 뜨개질로 고정시키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바느질과 회화의 접목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을 착안한 배경에는 유년시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작가의 할머니는 머릿기름 바른 바늘로 이불 홑청을 시치곤 했다. 그 모습이 어린 전재은에겐 중의적으로 다가왔다. 실과 바늘이 이불이 되고, 베개가 되는 것은 마술처럼 신기했지만, 가족 건사로 온 종일 고군분투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에 바느질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당신의 외로운 시간에 대한 언어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할머니의 바느질을 떠올리자 전재은은 장롱 속 할머니의 이불 호청과 명주실들을 꺼내서 바느질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바느질 회화의 시작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바느질을 해나가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저 역시 바느질이나 천과 매체 작업을 통해 조형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의 화면은 다분히 서사적이다. 작가의 기억이나 경험, 일상, 좋아하는 시인의 싯귀나 분절된 서사들을 하나의 서사 속으로 통합한 결과 서사성은 한결 짙어졌다. 특유의 서사성은 감각하는 것들을 즉각적으로 텍스트로 전환해 기억하는 그의 기질로부터 왔다. 그는 보고, 느끼고, 촉각하는 모든 것들을 텍스트로 기억한다. 그 텍스들이 캔버스 위에서 시각화되고 있다.
기억이나 일상, 누군가의 시어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하는 것은 추상적인 작업이다. 그의 작업이 추상적인 서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인 만큼, 분절된 서사를 하나로 엮어내는 역량은 필수다. 그는 추상적인 기억 속의 일이나 시어들에서 핵심적인 단어들을 축출해내고, 그것을 글로 쓰고 필사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그 과정 속에서 그의 뇌리에서 서사들이 맞물려가고, 다양한 형상들이 자리를 잡는다. 때로는 짧은 문장이나 단어를 바느질로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 속 장소는 존재하지 않거나 오래된 과거의 장소이거나 현재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풍경은 단순한 재현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오히려 장소가 주었던 정서나 기억에 관심을 둔다. 이는 곧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다르지 않고, 그것은 곧 수많은 무명씨들이 사소한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화면물감을 칠하고 바느질 하는 과정에서 경험이나 기억을 지층처럼 쌓고 다시 새겨갑니다. 드러내고 감추는 것의 반복이죠.”
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서사, 즉 풍경은 색을 반복해서 칠하고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발견한 바느질한 오브제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이 현재 바라보는 장소와 겹쳐지거나 화면의 층위를 만들어 낸다. 그것을 한 올 한 올 바느질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개념은 시간성이다. 그의 삶의 시간들과 시의 구절들에 배어있는 언어들이 한 땀 한 땀의 바느질로 연결된다.
그가 “긴 시간을 요하는 바느질과 매체를 중첩하는 것은 화면 위에 시간을 지층처럼 쌓는 과 같다”고 했다. 이는 그의 화면을 4차원으로 명명하는 이유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앞뒤로 중첩된 것을 꺼내기도 하고, 어떤 사물을 통해 환기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단 그것은 모두 장소와 연관돼 있죠.”
바느질한 오브제는 물감과 비교할 수 없는 거친 감성을 제공한다. 촉각은 강화되고 밀도감은 높아진다. 관건은 “물감과 오브제의 만남에서 격상하는 거친 물성을 어떻게 중화할 것인가”다.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화면은 요원해진다. 그는 두 물성 사이의 접점을 찾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작업은 단계적으로 변해왔다. 초기에는 바탕을 매끈하게 하고 그 위에 바느질한 오브제를 올리다가, 오브제만으로 작업을 구현하는 단계로 변화했다. 중첩된 화면에 오브제가 자리를 잡은 지금의 작업은 5년 정도 됐다. “조형적인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했을 때 바느질이라는 매체는 엄청 강했어요. 그것을 회화 속에 녹여내는 것이 20년이나 걸릴 만큼 어려웠어요.”
그의 작업은 은유적이다. 장소성에 위안 같은 정서들을 담아내는 것이 그의 관심사이고, 그것은 직설적일 때보다 은유적일 때 극대화된다. 그가 기억 속 장소와 얽힌 기억들을 재현이나 모방보다 재해석된 형상이나 바느질이나 물질의 순수성 등의 은유적인 기제들을 활용해 재창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실 너머 미지의 공간에 대한 작가의 염원이 숨어있다.
그의 작업은 텍스트와 형상, 바느질, 그리고 물성이라는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다. 각각의 요소들에 나름의 기능들이 부여되어 있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은 편안한 은신처 같은 공간이자 현실 너머의 미지의 공간이다. 그가 목표에 근접하기 위한 방편으로 은유법을 적극 활용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물성에 대한 믿음을 두고 있다. 재료의 본질적인 화학적 요소와 질감, 색채감으로 작품의 물질성을 극대화 하며 물성 자체의 아름다움이 스스로 빛을 발하도록 하며 공간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전재은 작가의 갤러리 CNK 개인전은 7월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