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대구의 소리
[대구논단] 대구의 소리
  • 승인 2024.06.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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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병관 지에스탑 대표

‘씨알의 소리’란 잡지를, 다석 유영모의 둔재스런 제자, 함석헌이 1970년 4월19일 잡지란 형식으로 세상에 내 놓았다. 기실 씨알사상은 안창호, 이승훈이 교육 독립운동을 시작하며 비롯된다. 이것을 유영모가 나라의 주인이자 주체인 ‘민’대신에 씨알이란 말을 사용했다. 백성이나 국민보다 더 소중하고 높여 부르는 말로서 ‘민’을 씨알이란 말로 대신해 사용했다. 즉 나라를 일으키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씨알’의 씨는 입안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소리이고 알은 가장 깊고 낮은 소리다. 뼛속까지 ‘대구사람’인 나에게 대구의 대가 ‘씨’이고 구가 ‘알’이다.

남산국민학교, 영남중학교, 달성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세포 하나하나에 대구사람이란 세포를 자랑스럽게 문패처럼 달고 다녔다. 근데 어느 날인가 나의 씨알인 대구가? “경제는 몰락하고, 정치는 무너진 자존심”의 상징이 되버렸다. 대구에서 떠 오르는 해는 언제나 내 가슴을 두드렸지만 이 나라에서, 다른 지역에서,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능과 퇴보의 도시이고, 대구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공허함과 절망감에 지친 이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았다.

한국인들은 곧잘 인구 245만의 대구를 150만 인구의 광주와 비교한다. 1980년대 대구의 총 수출액은 광주의 8배였다. 그러던 것이 5년 전부터 광주의 총수출액은 대구의 두배가 되었다. 앞방 뒷방을 계산하면 16배 역전을 당한 것이다. 광주 사람들에게 한 정당에 몰빵하는 정치적 부분을 대구와 닮았다하면, 광주는 엄청 모욕적이라며 버럭 화를 낸다.

“우리가 민주당 몰빵하는거랑 대구가 국힘당 몰빵하는 건 근본이 다르당께. 선거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광주의 소리는 민주당에 절대적이여. 근디 국민의힘이란 정당에서 대구가 필요할 때는 선거때 뿐이랑께. 대구는 어떤 생각도 주장도 하지마라 이거 아니여. 우리가 공천한 사람만 찍어주면 된다~ 이렇게 평가받는 곳이 대구여. 어디 우리광주랑 비교혀”. 딱히 할 말이 없다. 정치력의 성적표는 경제지수기에 유구무언이다. 대구는 정치부재 도시가 되어버렸다. 정치부재는 곧 경제의 몰락이다. 광주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뭘까? 현대가 생산하는 자동차 ‘캐스퍼’일까?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가전제품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5·18이다. 5·18을 앞세워 삼성과 현대를 유치하고, 김대중 컨벤션센터에 5조 5천억원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대구는 기존에 있던 제일모직 나가고, 코오롱 나가고, 경북도청 나가고, 대구공항 나가고, 계속 뺄셈의 경영을 해왔다. 김대중센터 100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박정희 기념관, 동상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가 않다. 2024년 이 시점에 대한민국에서 ‘광주의 소리’와 ‘대구의 소리’는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벌어져 있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이나 국민의힘에서 아이돌 같은 한동훈이나 광주정신 5·18을 헌법에 넣겠다고 역성까지 들어주는 상황이다.

보수정당의 수장이 이럴 정도니 대한민국에서 대구의 소리가 정의로울수도, 파워를 가질 수 도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대구사람이라면 30년동안 전국 GRDP 꼴찌가 대구라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GRDP가 전국 최강이던 시절도 있었다. 삼성 이병철이 대구 서시장 옆에 삼성상회로 출발한 건 고향 의령이 가까워서가 아니라 당시 경성시장, 평양시장보다 물동량이 더 많았다는 반증이다. 조선3대 시장 중에서 으뜸장이었기에 이병철이 그 ‘서시장’옆에 터전을 잡은 것이다.

해방공간과 60년대까지 대구의 경제생산은 전국 1위에 가까웠다. 바로 ‘조선의 모스크바’로 대구가 불리던 시절이다. 빨갱이류의 공산주의자가 많았다는 말보다 그 당시 정신사조를 대구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사상적으로 문학적으로 그 시기에 대구는 깊고 찬란했다. 1956년 5월 3대 대선에서 이승만은 신익희가 죽자, 진보당의 조봉암과 1대1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이승만 500만표 조봉암 210만표, 거의 트리플 스코어다. 0.7%로 차원이 다른 승리였다. 전라도 전역에서도 이승만이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바로 그때 참패한 조봉암이 이승만을 압도적으로로 이긴 지역이 있다. 바로 대구다. 5대 도시중 유일하게 이승만에게 이긴 지역이 대구였다. 이겨도 그냥 이긴게 아니라 이승만이 27% 조봉암72%란 3배 가까이 자유당을 응징한 지역이 바로 대구였다. 이 시기의 ‘대구의 소리’는 전국을 덮었고, 대한민국 대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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