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황명희 시인 '이율배반'
[강현국 시인의 디카시 읽기] 황명희 시인 '이율배반'
  • 승인 2024.06.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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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
 

약과 병 사이

악착같이 달라붙은

병이 주는 약과, 약이 주는 병 사이

마침내

쓰러진 그대 그림자

<감상> 영양제를 맞고 있는 저 나무는 몇 살 쯤 되었을까요?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플까요? 도로변에 서 있는 가로수 같습니다. 공해와 소음에 오래 시달려 힘들게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을 닮았습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약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습니다. 문무학 시인은 <인생의 주소>라는 시에서,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아! 인생//고작 꽃병과 약병/그 사이에 있던 것을……”과 같이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율배반>은 꽃병과 약병 사이가 아닌 약과 병 사이, 젊고 건강했던 꽃병의 시절을 괄호 친, 늙고 병든 약병의 한 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음의 상징인 푸른 잎을 자른, 나무 밑둥만 찍은 영상이 문자언어와 잘 호응하고 있습니다. 약과 병은 불가분의 악착같은 관계입니다. 병은 약을 필요로 하고 약은 병을 필요로 합니다. 병은 항체생성의 약이 되기도 하고, 약은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병이되기도 하니까요. 순리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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