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사무사 思無邪
[좋은 시를 찾아서] 사무사 思無邪
  • 승인 2024.06.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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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옥 시인

도덕 시간이었다

비둘기가 교실에 들어왔다

있음은 없음에서 나서(有生於無)

나도 너도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다며

노자 도덕경을 강의하는데

노상 창가에서 수업을 엿듣던 비둘기가

수업에 취해 교실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아차! 정신을 차린 비둘기는 나갈 곳을 찾았다

비둘기도 학생일 수 있고

학생도 비둘기일 수 있는 것이라고

비둘기에게 책상 하나를 마련해 주었지만

비둘기는 나오니 삶이요 들어가니 죽음(出生入死)이라고

나갈 곳만 찾았다

학생들보다 노자를 먼저 깨달은 비둘기는

말 않고 가르치겠다(行不言之敎)며

말없이 교실을 떠났다

빈 책상자리가 있는 듯 없는 듯 휑했다.

* 有生於無, 出生入死, 行不言之敎 : 노자『도덕경』에서 인용

◇송태옥= 2002 시문학 등단. 수도여자사범대학 국사교육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전공 . 구상솟대문학상 특별상 수상, 푸른시학상 수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서울문화재단 기금 수혜. 시집 ‘내 마음의 화음’, ‘내 열쇠 속 달동네’, ‘빛나되 눈부시지 않아’, 신앙시집 ‘인생의 길을 위하여’, ‘포근한 나의 성령님’이 있음.

<해설> 있는 듯 없는 듯, 그게 정답일 줄이야? 참 재미있는 시다. 요즘 많은 시들이 마냥 어렵기만 하다는 지적을 듣는데, 이 시는 딱딱할 것 같은 도덕 시간 노자의 도덕경을 비둘기를 데려와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있음은 없음에서 나서”가 그러하고, 창가에서 수업을 엿듣던 비둘기가 그러하고, “나오니 삶이요 들어가니 죽음”이란 경구가 그러하고, 말 않고 가르치겠다며 떠난 비둘기가 결국 있는 듯 없는 휑한 책상을 남겼으니, 공부가 제대로 도덕을 낳은 것이다. 비둘기에게 책상 하나를 마련해 주는 행위를 시 안에 녹여 기술한 것은, 노자의 진심 혹은 시인의 진심으로 읽힌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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