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이이남 작가 초대전…보건대 인당뮤지엄 8월 12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이이남 작가 초대전…보건대 인당뮤지엄 8월 12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4.06.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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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미술로 세상 이목 사로잡은 ‘제2의 백남준’
적절한 거리두기로 본질에 접근
DNA 정보 추출 고전회화와 결합
인공지능·레이저 빛 등 기술 활용
기술은 작가 정신 표현하는 형식
각 작품 속엔 철학적 메시지 가득
명화에 디지털 접목 ‘대중과 소통’
이이남 작 '시가 된 폭포'. 인당뮤지엄 제공
이이남 작 ‘시가 된 폭포’ 인당뮤지엄 제공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미술적인 언어로 치환한다는 발상이 이이남 작가의 생각이라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작업을 발표해 온 지난 20여년의 작업 여정에서, 마침내 그가 디지털 상에서 ‘존재의 본질’로까지 의미적인 확장을 감행했다는 소식은 놀라움보다 반가움에 가깝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그는 동서양의 명화에 움직임이라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일명 ‘디지털 회화’로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최근에 ‘존재의 본질’ 탐구로까지 의미적인 확장을 감행하고 있다.

◇ 존재의 본질을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인당뮤지엄 개인전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이이남 작가 초대전인 ‘Stand at the Center of Existence Beyond Visible Forms(형상 밖으로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형상 밖으로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 보이는 것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표명된 제목이다. “보이는 것 이면에 엄연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아울러야 보이는 존재에 실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는 그의 사유가 담겼다.

그가 대상의 실체에 접근하며 선택한 방식은 대상과 적절하게 거리두기다.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고 형상 밖에서 존재의 중심에 서려는 태도를 취한다. “지금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시대지만 사실은 우리가 보는 것은 28%밖에 안 된다고 해요. 72%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죠. 이번 전시에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는 “보이는 것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기운생동임”을 확실히 했다.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로 본질에 접근하는 태도는 일찍이 동양미학에서 시도된 방식이다. 당나라 시인 ‘사공도’는 좋은 시(詩)가 갖는 품격에 기준을 삼기 위해 이십사시품(二十四時品)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진경산수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십사시품의 핵심은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시와 시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십사시품에 영향을 받은 진경산수화, 남종화들을 소재로 그 원작이 담고 있는 형상을 통해 이미지와 거리를 두며 무엇을 보고 담으려 했는지 연구하게 됐어요.”

이번 전시를 아우르는 개념은 ‘형(形)’이다. 이십사시품의 정신에 입각한 개념으로,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자신이 느낀 감흥을 표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나는 누구인지?’, ‘나를 구성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등의 자신의 본질, 즉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가 자신의 본질을 거슬러가며 주목한 것은 DNA다. DNA는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 물질의 일종. 이이남은 자신의 DNA 정보를 추출한 DNA 염기서열 정보를 활용해 고전회화와 결합했다. 자신의 생체정보를 작품에 새긴 이유로 그는 “전통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에 서명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담는데,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디지털 시대의 고유성은 저의 본질적인 생명 정보인 DNA 생체정보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작품과 자신과의 합일”로 인식됐다. 그 합일이 그에게는 유한한 인간을 영원성으로 치환하는 기제다.

이번 전시에선 LED 8폭 병풍에 눈 내리는 대나무를 표현한 영상 ‘묵죽도’,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를 재해석한 ‘DNA 박연폭포’ 등의 작품들에 자신의 DNA 정보를 접목했다.

이번 전시에선 더욱 농익은 기술을 발견한다. 인공지능과 레이저 빛까지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했다. 작품 ‘흩어진 산수’에는 인공지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이남의 작품세계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중국 회화와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남종화를 융합하고 해체한 영상작품이다.

작품 ‘형상 밖으로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에는 레이저와 스모그가 분위기를 이끈다. 한국화 족자에 갇혔던 전통 산수가 전시장의 빛(빔 프로젝트)와 만나 현대미술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이이남 작 '벧엘에서 자는 박연폭포'. 인당뮤지엄 제공
이이남 작 '벧엘에서 자는 박연폭포'. 인당뮤지엄 제공

◇ 고전 명화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며 미학적인 사유 구현

기술이 기반인 작업은 명암이 엇갈린다. 신기술에 힘입은 시각적인 흡입력은 기술로부터 얻는 큰 효과지만, 기술의 변화 속도를 따라 잡기 힘들다는 맹점을 노출한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경우, 작업까지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작업이 작가의 주장이나 내면 상태에 대한 표출이라고 정의할 때, 작업의 정의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면 된다. 기술을 작가정신을 표현하는 형식의 차원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기술과 정신 사이에서 주체와 객체관계의 명확화다. 그럴 경우 기술이 제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작업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사유들이다.

작가 이이남은 컴퓨터 기술과 미술을 접목하며 20여년 째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해 왔지만 그의 명성은 시간에 비례해 높아만 간다. 우리 시대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컴퓨터 기술을 예술 구현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작업은 계속해서 진화했고,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름 앞에 제2의 백남준, 한국을 대표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의 작업이 기술보다 미학적인 사유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반증이다.

이번 전시에도 그의 철학적인 메시지로 가득하다. 고서로 만든 기단 위에 LED 라인을 여러 겹으로 수직 설치한 작품 ‘시(時)가 된 폭포’에는 인류의 정보 수단이자 정신적 계승의 산물인 글의 비물질적 가치를 빛의 폭포로 표현하고, 모니터를 수직 연결해 쉬지 않고 떨어지는 폭포를 형상화한 ‘일하는 박연폭포’에는 무한경쟁에 노출된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형태로 설치된 ‘벧엘에서 자는 박연폭포’에는 낮 동안 노동에 시달린 박연폭포가 잠든 모습을 형상화했다. 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휴식의 메시지다. 실(實)이라는 한자가 끊임없이 가루로 흩어지는 영상 작품 ‘분열하는 인류2’에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인류의 삶을 표출한다.
 

◇ 대중과의 소통력을 위해 명화 차용

디지털 환경은 인간의 모든 지식이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환원하고 융합한 세상이다. 디지털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류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이남과 디지털 기술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1997년, 순천대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포토샵이나 편집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목도하고 “재밌겠다” 싶어 디지털 기술을 회화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이이남의 이름이 각인된 시기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이다.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대중에게 익숙한 명화였다.

평면인 명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각색한 디지털 회화는 그를 단숨에 주목받게 했다. 대중과의 소통력을 높인 결과였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치 허백련, 겸재 정선, 남농 허건 등의 한국 명화들과 모네,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서양 명화들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한국적 미디어아트’를 구축하며 대중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국내외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며 ‘백남준의 진정한 후예’라는 평가를 받은 일등공신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명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은 단연 압도적이다. 명화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과의 소통력 때문이었다. “관람객의 발걸음을 오래 붙잡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관람객이 제 작품을 통해 영향을 받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것이 제겐 명화였어요.”

기술과 명화는 그에겐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현대미술로 끌어올리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가 ‘창의성’을 지목했다. 기술이나 소재보다 작가의 창의성, 즉 기술과 소재에 대한 작가의 해석역량이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이이남은 일상이 창의성 발현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기술과 명화라는 일반명사 같은 대상들에 자신의 창의성, 즉 재해석을 농익게 심으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는 “명화를 미디어 아트의 소재로 활용하면 확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며 “예술가의 창의성이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고전회화를 자신의 미학적 뿌리로 삼았지만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부단한 창의력을 발휘해왔다. 산수에 DNA를 접목하고 족자에 갇힌 전통 산수를 빔프로젝트로 현대미술화 하는 식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800여 회의 단체전, 80여 회의 개인전에 초대되며 디지털노마드(Digital nomod·디지털유목민)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 미국, 러시아, 독일, 벨기에 등 국내외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미국 토마 파운데이션, 예일대, 벨기에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 등 세계 각국의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대나무, 폭포, 한자 등의 전통 산수화 이미지들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대형 설치작품 10여점과 회화 5점, 오브제 3점 등을 전시하는 인당뮤지엄 이이남 초대전은 8월 1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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