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가을까지 계절 지나
농사에 쏟아부은 시간과 고생
시 한 편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일
농사의 고됨을 경험하지 않으면
농산물 가격에 별 생각 없을 것
중요한 것은 겸손 잃지 않는 것
좋아하는 글귀 중 ‘익숙한 것은 낯설게’라는 말이 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이 와 닿는다. 얼마 전 글을 읽다가 이 글귀가 또 떠올랐다.
시인 천영애가 출간한 산문집 ‘지금, 여기에서 - 곡란골 일기’를 한동안 곁에 두고 읽었다. 한가로울 때 차를 마시거나 하며 즐겨 읽었다. 시인이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도시(대구)를 떠나 자리를 잡은 곳인 영천 곡란골에서 텃밭을 일구는 낯선 삶을 살면서 느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골집을 오가며 50여년 만에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곤 했다.
◇쌀값과 원고료
여러 글 중 ‘쌀 한 가마의 수고로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익숙한 것은 낯설게’라는 구절이 생각난 것이다.
‘문득 쌀 한 가마와 시 한 편의 원고료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원고료가 너무 적다고, 우리 사회는 예술가들을 너무 박대한다고 푸념했는데 그걸 깨달은 순간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처음에 별 생각 없이 사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 무거운 쌀과 내가 쓰는 시 한 편의 값이 비슷하다는 것을.
내가 쓰는 시 한 편과 농부가 지은 쌀농사의 노고를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시 쓰는 일이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 해도 농부가 짓는 농사의 가치 또한 적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시 쓸 때의 수고로움과 농사지을 때의 수고로움은 어느 것이 더 많고 적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모든 노동이 다 그러할 것이다. 다만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을 지나면서 농사에 쏟아 부은 그 시간과 고생은 내가 시 한 편을 쓸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시 쓰는 일과 농사짓는 일의 수고로움을 물리적인 힘으로 따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농사짓는 일이 더 힘들 것 같다.’
이어 농사의 수고로움과 예술의 가치에 대해 더 이야기한 후 ‘그러나 나는 이 곡란골에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식량인 쌀값이 터무니없이 싸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적고 있다.
이맘때가 보리 수확의 계절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논밭에 보리와 밀의 수확이 한창이었을 때지만, 지금은 보리밭이나 밀밭을 쉽게 구경할 수가 없다. 농사일 중 쉬운 것이 없지만, 필자의 기억으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보리를 수확하고 타작하는 일이었다. 무더위 속에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는 것도 힘들지만, 보릿단 가득한 지게를 지고 오르막을 오르며 집 마당까지 옮기는 일은 고역 중 고역이었다. 땀이 팥죽처럼 흘러내리고, 그 땀은 보리 낱알에 달린 깔끄러운 긴 수염과 범벅이 되면서 고도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런 일을 며칠 간 반복해야 했다. 무더위 속에 탈곡기로 타작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지게를 지고 고갯길을 오르다 몇 번을 쉬는데, 간혹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 먹게 되면 큰 힘이 되었다. 오전 또는 오후 일을 마친 뒤 시원한 샘물을 마시고, 그 샘물로 등목을 하면서 잠시나마 괴로운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된장·고추장으로 비빈 보리밥이나 칼국수를 배불리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
농사의 고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농산물의 가격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천영애 시인이 시골에서 농사를 경험하지 않았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란 이처럼 쉽지가 않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 고정관념이나 편견, 개인적 성향 등에 빠져 주관적 판단을 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힘을 길러 건강한 시각을 유지하는 일은 나와 남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요즘 정치적 사안을 비롯한 사회적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려스런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한 사회, 행복한 사회로 가는 데 큰 장애가 될 뿐이다.
최근에 태국을 여행하고 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가장 눈에 띄고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 거리에 떠도는 개들을 보는 것이었다. 함께한 일행 모두에게 그랬다. 좁은 주택가 골목은 물론, 차량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는 도심 도로에서도 곳곳에서 개를 볼 수 있었다. 개들은 대부분 생기가 별로 없고 배가 고파 보였다. 주인 없는 개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나라였다. 가이드 설명은 불교 국가여서 개를 죽이거나 하지 않고 방치하기 때문이란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돌보는 개는 거의 없고, 주민들이 승려에게 시주하듯이 주변 개에게도 음식을 주곤 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했다. 일부 부유한 이들이 애완견을 키우기도 하는데, 이들 애완견과 관련 용품은 한국에서 수입해온다고 들려줬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태국의 이런 개 문화에 대해 언급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떤 이들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라도, 다른 문화와 환경의 사람이 보면 참으로 낯설게 다가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의식의 성숙을 위해 익숙한 것은 낯설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나 세계관에 빠져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낯선 것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 낯선 것은 익숙하게’라는 말은 중국 송나라 승려인 대혜 종고(大慧 宗고:1089~1163) 선사가 불법을 수행하는 데 요긴한 가르침을 묻는 이에게 ‘설은 것은 익게 하고(生處放敎熟), 익은 것은 설게 하라(熟處放敎生)’고 일러준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 ‘익은 것’은 중생계의 일(衆生界中事), 즉 부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말한다. 이것은 수 없는 생을 거듭하며 익혀왔기에 배우지 않아도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은 것’은 세속의 번뇌를 초월한 출세간(出世間)의 근원적인 지혜(般若)의 마음이다. 즉 부처의 마음이다. 탐진치(貪嗔痴) 삼독에 물든 중생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데 비해, 그것을 벗어난 부처의 마음, 무아(無我)의 마음은 낯설기만 한 것이다.
대혜 선사는 화두(話頭)를 관하는 선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화두선(話頭禪)을 제창해 승려는 물론 많은 사대부 지식인들에게 화두를 통해 부처의 마음, 본래면목을 드러내도록 가르쳤다. 그는 이 ‘낯선 것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낯설게 하는 것’이 선(禪) 수행의 요체라고 말하고 있다. 화두는 선(禪)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하는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는 일반적인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모든 사량 분별심이 끊어진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다.
대혜 선사는 선 수행에 관해 주고받은 문답 편지 글을 담은 책 ‘서장(書狀)’ 곳곳에서 생처(生處)와 숙처(熟處)를 언급하며 설은 것은 익게 되고 익은 것은 설게 되도록 간절하게 노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인 각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든, 선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든 ‘익숙한 것은 낯설게, 낯선 것은 익숙하게’
김봉규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