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그림자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좋은 시를 찾아서] 그림자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 승인 2024.06.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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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원 시인

나는 상자에요 낡았고 누군가 다녀간 흔적도 있어요. 그러나 다녀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아요. 상자도 그림자는 가두지 못하니까요. 밤이 되면 그림자는 투명해지니까요. 어떤 사람은 버려진 것도 그림자였다고 수군거리더군요. 상자에는 그림자도 많아요, 고양이 그림자도 있고 애인에게 받은 꽃 그림자도 있고 아기 그림자도 있어요. 그림자는 그림자여서 봄밤에 펄럭이는 기저귀일까요. 하지만 내가 말했지요. 상자도 그림자는 가두지 못해요. 나는 상자에요 이어지지 못한 벽이고 벌어진 틈이에요. 어둠이 내게 얼굴을 파묻으면 나는 서늘하고 어두워지죠. 출구가 보이지 않지요. 내 모서리를 만지면 날카로운 바닥이 느껴질 거예요. 육면체는 모두 바닥이니까요. 상자에게도 엄마가 있을까요? 아기 그림자가 나를 다녀갔으니 내가 엄마일까요? 봄밤에 펄럭이던 아기 그림자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그림자를 버리고 가는 그림자들을 보았어요.

◇김수원= 불교문예 시 등단, 한국시조문학시조등단. 국제 펜 회원. 한국문협회원. 인천문협회원. 인천시인협회회원. 산림문학편집위원및 이사. 불교문예이사. 계간문예이사. 중앙대문인회이사. 현인문학회원. 징검다리문학 회장. 참여문학상 수상 계간문예 상상탐구 작가상 수상, 서로다독 작가상 수상. 숲속에 시인상 수상. 시집 ‘바람의 순례’ 외 다수.

<해설> 그림자를 버리고 가는 그림자들이 오늘날 모성이 사라진 우리 사회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림자와 상자의 관계에서 시인은 무엇을 본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상자의 비애 이전에 여러 그림자가 다녀갔다는 것, 상자는 시인 자신이라는, 환치를 통해서 그림자의 면면들을 들춰내고 있다. 제목이 주는 의문 또한 신선하기 그지없다. 그림자가 펄럭이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대상물이 펄럭이니까 그림자가 펄럭여 보일 뿐 그러나 모순이 이 시를 끝까지 읽게 한다. 그림자 이야길 하면서도 시인의 직관은 고양이-애인-기저귀-엄마를 상자에 담아낸다. 상자는 어떤 성향인지, 각지고 바닥마저 날카로운 육면체가 봄밤을 섬뜩하게 불러세우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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