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박정희] (1) 한강의 기적:성공 요인과 교훈...인기 영합 않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기적 불렀다
[2024 박정희] (1) 한강의 기적:성공 요인과 교훈...인기 영합 않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기적 불렀다
  • 윤덕우
  • 승인 2024.06.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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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고 해결 위해 자주경제 재건 총력
의욕만 앞선 초기 공업화 전략은 실패
제조·수공업 육성 수출 제일주의 수정
국민·우방국 설득 자본·기술 등 도입
국가주도형 정책에 글로벌 기업 탄생
獨 광부·베트남 용사 등 국민들 힘 모아
직접 양말 빨기·헐렁한 혁대 등 ;진정성'
경제 동향 보고 꼭 참석 애로사항 해결
조국 근대화·산업화 주도에 신명 바쳐
題字: 석경 이원동
題字: 석경 이원동

 

 

100억불 수출 경축 기념아치
1977년 12월 광화문에 세워진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 아치.

사단법인 미래 본 부설 박정희아카데미(원장 강영욱)는 2018년부터 7회에 걸쳐 박정희 아카데미를 개최하면서 조국근대화와 산업화를 주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명했다. 그러나 시간 및 장소적 제한으로 그 조명이 대중화되지 못했다. 특히 청년층에는 더욱 그러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부국강병의 일념으로 이룩한 산업화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각광받는 새마을운동은 이제 인류공영의 이념으로 ‘박정희 정신’의 상징이 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세대에도 관통할 불멸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아카데미 산하 박정희연구회에서 60여개 주제를 격주로 연재하면서 보완하려고 한다. 연재 제목은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있는 ‘2024 박정희’다.

연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과(功過)를 진솔하게 알리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청소년기와 청년으로서 성장하면서 가졌던 고뇌와 이상, 해방 정국에서 겪었던 갈등, 남북분단 하에서 부국강병을 통해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과 이상, 그리고 좌절을 객관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청년층을 비롯한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이란 주제로 그 서막을 연다.

구직
임응식 작가의 1953년 작품 <구직>.

임응식 작가의 1953년 작품 <구직>. 일제 식민지시대에 태어나 해방 후 6.25 전쟁을 겪은 당시 청년의 모습을 잘 표현한 사진이다. 사진 속 청년은 서울 명동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큼직한 붓글씨로 쓴 구직(求職)이란 글자를 목에 걸고 있다. 아랫배에 질끈 동여맨 한 장의 종이에 가족의 생계를 걸고 거리에 나선 청년의 모습을 통해 전후 한국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장군은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그 당시 박 장군은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절망적인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 경주한다’는 혁명공약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선진국 학자들이 추천하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따르던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 전략이었다. 초기 조건을 무시하고 의욕만 앞선 정부는 재원조달을 위해 화폐개혁 등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부는 1964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수출 제일주의로 수정했다. 그 당시 낮은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및 수공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며, 관료들도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64년 수출 1억2천만 달러를 달성했다. 1970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출 10억 달러, 그리고 1977년 말에는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소득 1천 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한강기적의주역
연극 ‘한강의 기적’ 포스터. 한강기적의 주역들인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자본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국가와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과학기술 인력이 절대 부족한 가운데 한국이 단기간에 이룬 경제성장을 라인강의 기적에 비유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민중극단은 2011년 초연에 이어 2013년 ‘한강의 기적’을 재공연하였다. 반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 권력의 압제에 시달린 암울한 시대로 비판한 경우도 있다. 도시빈민 문제를 다룬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대표적이다. 벨 엘포크 시대(아름다운 시대) 영국의 도시 노동자나 빈민의 이야기를 다룬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와 오버랩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든 사물을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사적인 경험을 단편적으로 보고 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의 번영과 정책의 성공 여부는 지도자들의 인기 여부가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거울로 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살았던 부모 세대들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뤘는지 성공요인이 궁금하다. 아마도 지도자의 리더십,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국민이 흘린 피와 땀이 아닐까.

먼저,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가난을 몸소 경험한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비전을 수치로 단순하게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1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제시한 후 이 목표가 달성되면 보리밥을 먹을지언정 국민들의 생활고는 해결된다고 했다. 또한 10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 목표가 달성되면 국민 1인당 GNP는 1000달러가 되어 국민들의 의식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고 설득했다. 이처럼 수치로 표시하면 국민들은 알기 쉽게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수준을 현재와 비교할 수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을 설득했다.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과 기술 도입을 위해 한일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결정했으며, 경부고속도로, 종합제철소(포스코), 원자력 발전소 건립 등은 잘못되면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이었다. 특히 한국이 중공업에 투자하자 미국은 경공업 산업이 우선이라고 반대하면서 원조를 감축했다. 포스코를 짓기 위해 신일본제철에 기술협력을 요청했지만 나사못 하나 못 만드는 한국이 제철산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했다.

둘째,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이다. 산업화 시대 대표적인 기업가로는 삼성 이병철 회장,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 엘지그룹의 구인회 회장 등이 있다. 당시 국가 주도형 수출정책으로 금융, 세제, 외환 정책 등의 혜택을 받아 성장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 민간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예는 찾기 어렵다,

또한 재일교포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경영노하우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63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인과 가진 간담회에서 코오롱 이원만 회장은 일본처럼 가발이나 조화 같은 경공업제품을 만들어서 수출하면 임금이 싸니까 얼마든지 수출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100만 평 규모의 땅을 제공한 것이 구로수출산업공단의 출발이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기아그룹 김철호 회장을 들 수 있다.

1997년외환위기당시전국민금모으기운동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국민 금모으기 운동. 이렇게 힘을 모아 1년 만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셋째, 국민들이 흘린 피와 땀이다. 우리 국민들은 평소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뭉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1960년대에는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참전 용사, 1980년대에는 열사의 땅 중동에 진출한 건설 노동자, 그리고 IMF 때 금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당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젊은 청년들은 광부와 간호사로 먼 이국땅 서독으로 떠났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IST), 개발차관, 한국군 현대화 등을 담보로 베트남에 파병했다. 조갑제 기자는 1965년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들을 포함한 해외 취업자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상품수출액의 10.5%, 무역외 수입의 14.6%나 되었으며, 1967년에는 베트남 파병에 따른 특수로 해외송금액이 상품 수출액의 36%, 무역외 수지의 31%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 자금은 포스코와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됐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정치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솔선수범했다. 호텔에서 직접 양말을 빠는 모습, 청와대 화장실 변기통에서 발견된 벽돌 한 장, 구멍이 헐렁해진 혁대 등은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호원, 비서관, 이발사가 우연히 목격한 모습이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구멍 난 양발이나 헤어진 구두 뒤창을 슬쩍 기자의 사진에 노출시킨다. 오히려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박정희대통령수출진흥확대회의개최일지
박대통령 참석한 수출진흥확대회의 개최일지. 빈칸은 개최하지 않은 달이다.

둘째, 경제는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자본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경제개발 초기에는 정부 관료들이 직접 주도했다. 박 대통령은 수출진흥을 위해 상공부에서 개최하는 ‘수출확대회의’와 경제기획원에서 개최하는 ‘월간 경제동향 보고회의’에 꼭 참석하여 브리핑을 청취했으며, 업계나 학계의 의견을 듣고 애로사항을 해결했다. 그러나 수출이 급증한 원인은 경제인들이 갖고 있는 수출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수출보조금, 세율, 환율, 이자율 등 수출환경 조성을 위한 일관된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셋째, 인기영합적인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 이 시대에 추진한 한일국교 정상화는 지금도 정치권에서 이용할 정도로 폭발성이 강했지만 오히려 국민을 설득하면서 추진했다. 반면 절대 다수당인 야당은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주기 위하여 제22대 국회에서 민생위기극복특별조치법을 1호 법안으로 채택했다. 세 번이나 국정 경험이 있는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 다소 아쉬움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박 대통령이 진보적인 아젠다를 선점했기 때문에 현금 살포 외에는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기가 어렵다고 비아냥거린다.

외국에서도 60~70년대 이룬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성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농공상의 유교적 전통 때문인지 군출신인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박 대통령은 남북이 대치한 상태에서 국가안보와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경제성장에 신명을 바쳤다. 대구시에서 박 대통령 동상 만드는 것을 우상화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박정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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