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 차가운 맨홀 뚜껑 들여다보니 도시 역사·산업·문화 숨어있었네
[일상 속 디자인 기행] 차가운 맨홀 뚜껑 들여다보니 도시 역사·산업·문화 숨어있었네
  • 류지희
  • 승인 2024.06.2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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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고르게 분산시키는 원 형태
지속 압력에도 형태 유지 잘돼
서울엔 1930년대 제작 뚜껑도
효율·안정·미학 ‘세 토끼’ 잡아
도시 다르게 보려면 ‘맨홀’을
수직 구멍 막는 구조물이지만
이색적 디자인으로 눈길 끌어
日 하수도 설비 인식 제고 목적
지자체별 독창적 디자인 개발
벚꽃·인기 캐릭터 등 새겨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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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거리의 화려한 맨홀 뚜껑 디자인이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일본 관광 명소 및 도시성을 상징하는 동식물들까지 다양하고 센스있게 표현되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을 제공하여 도시이미지를 한 층 더 생기있게 밝힌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곳에도 의미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것들이 있다. 몇 해 전, 대구근대골목을 투어하면서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아이템이 하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게 하는 이 것은 바로 ‘맨홀 뚜껑’이다. 누구나 길을 거닐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며 봐왔을 법한 맨홀 뚜껑. 길바닥에 동그란 뚜껑이 덮여있는 모양새로, 대부분은 이것을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커다란 수직 구멍을 막는 도로 구조물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새카맣고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이 맨홀에도 저마다의 스토리와 역사적인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맨홀 뚜껑은 각 지역마다의 특징을 담은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채색 계열로 짙은 회색이나 검정의 어두운 디자인이 많다. 이는 맨홀 뚜껑을 더러운 부분을 덮어 가리는 흉측한 덮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는 컬러풀한 맨홀 뚜껑부터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이색적인 디자인들이 도심의 거리 곳곳에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화려한 꽃 패턴으로 장식하고 과하지 않은 색으로 물들인 맨홀 뚜껑은 디자인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듯한 소소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아기자기한 맨홀 뚜껑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뿐만 아니라,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도 알록달록하고 예쁜 맨홀은 마치 환영인사를 건네는 듯한 기분 좋은 요소가 된다.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새롭게 마든 하수도 설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지자체별로 독창적인 맨홀 뚜껑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문화, 산업, 역사 등을 지나가기 쉬운 맨홀에 담아내어 알리고 있다. 벚꽃이 유명한 지역은 벚꽃이 화려하게 그려진 연분홍의 맨홀, 역사적인 관광 명소가 있는 곳은 마치 동전 화폐에 새기듯 정교한 모습으로 판각된 맨홀, 유명한 도라에몽이나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맨홀을 한 폭의 도화지 삼아 담아내었다.

이렇다 보니, 이색적인 맨홀 뚜껑 디자인 수집을 위해 전 세계의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맨홀 뚜껑 사진을 촬영하고 재편집을 통해 예술작품화하는 작가들도 있다. 각각의 맨홀 뚜껑 사진은 별개일 때 보다, 여러 개를 하나로 취합하여 재해석한 편집 과정을 거치면 화려하고 독특한 패턴화를 이루어 퀄리티 있는 미술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하나는 힘이 약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은 개체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로도 충실함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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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역사를 함께 해온 오래되고 낡은 지문과도 같은 맨홀 뚜껑의 모습이다. 화려한 색감이나 장식적인 요소는 없지만, 무던하게 도시 거리 곳곳에서 무게를 견뎌온 전통적인 패턴들이 기특하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맨홀 뚜껑은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도시경관법을 고려한 실용성을 물론, 그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 너무나 당연히 생각해 왔던 것이지만 맨홀 뚜껑은 왜 다 동그란 모양일까? 그 이유는 원형 모양이 외부 힘을 고르게 분산시켜 무거운 하중을 견디고 변형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또, 원 안에는 방향이 없기 때문에 설치 중 정렬이 간편해져 정확하게 맞아야 하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커버와 달리 어떤 방향으로도 배치가 가능하다. 이는 현장에서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줄여준다. 원형은 안정성을 주는 모양으로 도로 위에 다니는 사람과 차량 등에 의해 지속적인 압력을 받더라도 구조적 완전성 또한 함께 유지한다. 이러한 내구성은 맨홀 뚜껑 도시경관 물의 수명을 연장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유지 관리 비용 또한 줄여주는 이점이 있다.

서울의 경우 60만여 개의 맨홀 뚜껑이 있다. 모양과 더불에 쉽게 파손되지 않는 주철 소재로 만들어 긴 세월 사용하다 보니 쉽게 파손되거나 변하지 않는다. 제작 당시 정부 부처나 회사 이름, 역사적 사건명과 일자를 기록한 경우도 적지 않은데, 몇 십 년 뒤에 찾아도 그대로일 만큼 손실이 없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성전기 주식회사’로고가 여전히 새겨져 있다.

결론적으로 맨홀 뚜껑은 고대 디자인 원칙에 뿌리를 둔 제조 효율성, 안정성, 미학성을 골고루 고려하여 충족시킨 사려 깊은 엔지니어링적인 유산이다. 그리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지속적인 도시문화유산으로서 하나의 역사적 요소 남아있지 않을까.

혹시나 오늘부터 길을 걷다 도시 거리에서 원형의 맨홀 뚜껑을 만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멈춰 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겠다. 그 소박한 표면 아래 숨겨진 복잡성을 감상하고 도시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기억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보자.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인식해 보는 것도 좋겠다.
 

 
류지희<작가·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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