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정점식미술이론상 수상자 강선학 미술평론가, “지역 미술 정리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 글 쓰기 시작”
제3회 정점식미술이론상 수상자 강선학 미술평론가, “지역 미술 정리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 글 쓰기 시작”
  • 황인옥
  • 승인 2024.06.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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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서 40여년간 비평 활동
비평서 17권 출간…개인전 16회
보상 적어도 사명의식으로 계속
평론글도 문학·예술적 문장돼야
실기 능력 있으면 글 훨씬 달라져
대구·경북도 좋은 평론가 육성해야
정점식상수상자-강선학
정점식미술이론상 수상자 강선학이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미술 비평가로 사는 것은 녹록지 않다. 지금도 지방에서 평론글에 지불하는 비용이 턱없이 낮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사력을 다해 평론서를 출간해도, 판매 실적은 미미할 뿐이다. 심지어 지역에서 중앙으로 존재감을 확장하는 것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제3회 정점식미술이론상’ 수상자로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강선학(姜善學, 1953년생)이 선정된 것은 비록 녹록하진 않았지만, 지역 미술에 헌신하며 의미 있는 여정을 걸어온 그의 40여 년의 발자취에 대한 찬사로 읽힌다. 시상식은 지난 13일 오후 대구미술관 어미홀에서 열렸다. 그에겐 상패와 함께 부상 2,000만원이 수여됐다.

조선령 심사위원장은 이날 “40년간 미술비평가로 활동하면서 17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는 등 비평적 글쓰기의 드문 사례를 보여주며, 미학 이론을 비판과 조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지식인의 모범사례”라며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많은 이들이 쏟아낸 찬사에 그는 “‘정점식미술이론상’이 공로상이나 격려 차원의 상이 아니라, 곤혹스러운 글쓰기의 현장을 평가한 상이기를 기대한다“며 쉽지 않았던 지난 여정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정점식미술이론상은 고(故)정점식 화백(1917~2009)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구광역시와 도솔문화원(정점식 화백 유족 설립)이 공동제정한 상이다. 미술창작을 제외한 미술 전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선도하는 기획자, 평론가, 연구자 등을 발굴해 시상한다.

강선학은 평론집 ‘그 바깥에서의 다툼’으로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책은 부산·경남 지역 미술관의 전시 형태에 대한 비판적 고찰부터, 한국화의 현대적 해석, 부산미술의 초기 담론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중심으로 폭 넓은 지적(知的) 스펙트럼을 보여준 저작이다.

강선학의 위상은 부산·경남 지역을 넘어선다. ‘그 바깥에서의 다툼’(2023, 뮤트스튜디오, 부산), ‘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2021, 뮤트스튜디오, 부산) 등 1989년부터 2023년까지 평론집을 무려 17권이나 발간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저서를 통해 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미술을 연구하고 정체성을 정립한 것은 그의 성과로 꼽힌다.

공저작물로 ‘한국현대미술가100인’(2009, 사문난적, 서울), ‘프리즘-한국현대미술 3인의 시각’(2012, 도서출판ICAS, 서울) 등이 있다. 그 밖에 2011년 제3회 미술평론가협회상 미술평론 부문 대상(미술평론가협회)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대한민국 평론계에서 그의 위상이 확고해졌지만, 그의 출발은 미술 작가였다. 그는 부산대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고,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중견 작가다. 비평가로서의 활동도 일찍부터 시작해 비평과 회화 작업을 병행해 왔다.

미술 공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비평이 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 못지않게 미술 이론 공부를 치열하게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시대상과 맞물렸다. 그가 학부와 대학원에 재학할 시기, 그의 스승들이 가르치는 미술이론은 그의 지적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서양미술 1세대로 작가활동을 하다 교수로 임용된 경우가 많았다.

강선학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을 택했고, 미술 이론서들을 섭렵해갔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평론글들이 샘솟듯 솟구쳤다. “질문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그로 인해 공부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평론가가 경제적인 보상이나 사회적인 인지도를 기대하면 길게 가기 어렵다.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은 보장되어야 평론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데, 지역의 여건은 매번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로 인해 견뎌야 하는 외로움의 무게도 적지 않다.

강선학이 그럼에도 장기전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를 대체할 평론가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절박함과 맞닿았다. “제 스스로 부산·경남 지역의 미술을 정리해 가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할 만큼 평론가 부재 현상이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지난 40년간 미술 비평가로 활동하며 17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는 등 비평적 글쓰기의 드문 사례를 보여주며, 미학 이론을 비판과 조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지식인의 모범사례로서의 여정을 걸어왔다. 그를 이끈 것은 사명감이었다.

제아무리 사명의식이 강해도 스스로 즐기지 못했다면 보상이 미미한 일을 계속 끌고 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독서하고 글 쓰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책과 글을 향한 열정이 글쓰기의 중요한 동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비평 글을 쓰는 것이 제 직업이었고 제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그의 평론은 이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부산·경남 미술의 현주소나 지역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예리하게 통찰하지만 문학적인 필력도 문학가에 버금간다. 평론글은 건조하고 딱딱하다는 생각은 그에 의해 무참히 깨진다. “평론글에도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맛이 풍부한 문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독자에게 ‘읽는 맛’을 제공하는 것도 평론가의 역할이라는 것.

“평론글도 다양한 생각과 미적인 감수성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따라 갈만한 풍부한 표현들이 함께 가줘야 합니다.”

유려하고 섬세한 필치에 대한 확신은 그 자신 어느 정도 자질을 갖췄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24세에 현대문학 시인으로 등단하고,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다. 문학가 대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매일 하루 3시간 정도는 할애해서 꾸준하게 독서를 하고 있다. 그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출발이다.

문학가에 버금가는 필력과 함께 그의 평론글이 남다른 평가를 받는 지점은 작품에 대한 이해도다. 그는 음악비평가인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음악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1급 연주자만큼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을 시금석으로 삼는다. 핵심은 “평론가가 1급 연주자만큼의 연주력을 갖춰야 연주자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업과 평론을 병행하는 그에겐 미술 평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작가가 그림에서 표현한 맛을 평론가 스스로 표현할 수 있어야 작가의 그림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작업과 평론을 겸하는 그로서는 아도르노의 말이 가슴에 내리꽂힐만 했다. “평론가가 작가일 필요는 없지만 그 정도의 실기 능력이 있으면 평론글도 훨씬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매번 의문은 생긴다. 비평 대상인 작품을 보고, 분석하고, 이해한 다음에 해석하는 과정에서 과연 작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근접했느냐다.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기보다 내 언어로 치환해 작품을 계속 돌리는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은 매번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것 또한 받아들인다. 그는 평론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외국 서적에 비유한다.

“저의 충실성이나 정결성이나 진정성이 있다면 과연 작품을 비평할 때 저의 주안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되지만 그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역이라는 지리적인 제한은 지역 미술 평론에도 호의적이지 않다. 작가의 수는 서울과 비교불가일 만큼 적고, 연간 열리는 전시 또한 서울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평론할 대상을 찾는데 단조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단조롭기엔 쓸 전시들이 너무 많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가 “연간 부산·경남에서 열리는 500개의 전시 중 50개는 좋고, 50개는 나쁘다고 했을 때 좋은 작품은 칭찬하고 나쁜 작품은 욕을 해야 한다. 단조로울 틈이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연간 100개의 평론글을 써도 1년 내내 평론글을 써야 한다는 논리였다.

평론가로서 가지는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비평적 태도는 있을지언정 이론적 틀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학적 지식이나 전술적 지식, 철학적 이론을 갖췄더라도 그 틀을 벗어나는 작품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때 중요하게 요구되는 비평가의 덕목으로 ”유연한 대처“를 들었다. 그의 입장은 ”나를 부정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보는 대상인 작품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오는 불화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며 나오는 것이 현장 비평“이라는 것이다.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그에게 지역적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지역 소외는 있을지언정 예술은 지역으로 한계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정 짓는다. 중앙과 지역을 분리하는 것을 정치적이거나 이해관계의 산물로까지 받아들인다. “글과 작품, 행위에 무슨 중앙과 지역이 있겠습니까? 다만 글이 있고, 작품이 있고, 작가의 행위가 있는 것뿐입니다.” 그가 대구 평론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평론을 둘러싼 지역의 환경들이 열악하지만 대구·경북 지역의 미술이 제대로 정립되고 평가되기 위해선 좋은 비평가를 육성해야 하는데, 대구·경북의 상황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지역에서 좋은 평론가를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 문자의 힘을 지목했다. 지역의 미술을 어떻게 읽고, 의미화 할 것인가는 문자가 가지는 힘이고, 우리가 문자에 기대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이고, 평론이야말로 어떤 작품이 어떤 미학적인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각 시대마다 정보만 있고 그 미술에 대한 의미부여가 없다면, 그 시대의 미술은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리겠지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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