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수만송이 피어난 ‘꽃의 궁전’…사람들도 웃음꽃 ‘활짝’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수만송이 피어난 ‘꽃의 궁전’…사람들도 웃음꽃 ‘활짝’
  • 채영택
  • 승인 2024.06.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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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페스티벌 그리고 박람회
궁전에 들어서자 코 찌르는 향기
녹색 식물들 잔상 눈에 한 가득
우아한 자태 뽐내며 사람들 유혹
중년 여성들의 꽃바구니 만들기
반짝이는 눈망울 예사롭지 않아
화사한 웃음소리 궁전 가득 채워
사진2
꽃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곳은 마치 궁전의 정원 같다.
 
사진6
하얀 손놀림으로 꽃대를 자르는 사람들의 꽃웃음 소리가 화사하다.

아까시나무 꽃 청춘의 향기가 저물고 산과 마을 근처에는 온통 밤꽃으로 뒤덮혀 스퍼민 성분의 야릇하고 오묘한 꽃 냄새가 도시를 뒤덮는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는 도시고 농촌이고 가리지 않는다. 조금만 더 시골로 가다보면 뻐꾸기 울음소리와 함께 실려오는 밤꽃 냄새는 더욱 진하게 코를 자극하고 어느덧 모내기가 끝나가는 시기다. 이 밤꽃이 떨어질 때 쯤 여름은 더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고 달빛 투명한 밤하늘에 펼쳐지는 야생의 연회(戀懷)로 밤꽃은 더욱 하얗게 빛난다.

며칠 전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봄바람에 훌쩍 떠나버린 꽃들이 한자리에 모여 꽃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꽃 박람회라는 표현을 썼지만 필자는 꽃 페스티벌이라 쓰고 싶다. 늦었지만 그때의 소회를 필자 나름대로 적어본다.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간간히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가 싶더니 초여름의 햇빛에 데워진 맑은 빗방울이 자동차 유리에 알알이 부서진다. 꽃들이 춤추는 그곳으로 가는 길은 하천을 따라 흘러가다 바다로 향해가는 먼 여정이 시작되는 금호강변의 점이지대(漸移地帶)로 과거 사과밭의 흥망성쇠의 땅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또 그곳은 꽃의 빛깔을 담고 있는 하얀 철 트러스트와 유리로 장식된 궁전 같은 곳이다.

꽃 페스티벌과 박람회, 둘 다 비슷한 의미지만 페스티벌은 좀 더 다양하고 가볍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 반해 박람회는 정적이면서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꽃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궁전으로 들어서자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빛과 향기가 순간 내 눈과 코를 멀게 한다. 그러다 갑자기 환해지는 꽃과 녹색 식물들의 잔상이 눈에 한 가득 들어온다. 꽃은 향기와 빛으로 소통한다. 궁전으로 들어서면 꽃을 보는게 아니라 꽃들이 만들어 내는 빛과 색의 마술을 보는 듯하다. 하나로 멈춰 있는 빛이 아니라 이 공간으로 들어서면 누구나 꽃들이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하루의 일상을 경험하는 생명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꽃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궁전에 있다 보니 꽃이 온통 내 가슴에 들어왔다. 야생의 꽃밭에는 꽃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만 이곳 꽃 페스티벌에는 꽃과 나비는 없는 것일까. 조선의 화가 김홍도는 화접도를 그렸다. 하얀 찔레꽃 옆에 날고 있는 호랑나비와 왕오색나비 그리고 작은 멋쟁이나비가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는 듯하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드는 사이 내 앞의 전시 공간 사이를 오가며 사진을 찍는 중년 여성의 모델들이 오색나비로 보이는 것은 어떤 연유인지. 어디 그뿐이랴 해바라기며 노란 장미와 분홍 장미를 비롯하여 변치않는 사랑을 의미하는 리시안셔스와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꽃들이 궁전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나비와 벌을 기다리듯 진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궁전은 한동안 여기 모인 꽃들의 미소와 이곳을 찾는 이들의 화사한 웃음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야생의 나비와 벌이 꿀과 향기를 찾아 날아오듯 이곳 꽃 페스티벌이 열리는 궁전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나비와 벌이 된 듯 이곳 저곳 물결처럼 피어나는 꽃향기를 맡으며 봄바람에 노래하며 춤을 추는 것 같다. 작은 꽃 하나에도 이렇듯 위대한 생명력이 담겨있어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들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바로 옆에는 고색 창연한 청라버스 한 대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박태준의 ‘동무 생각’이 절로 나는 풍경이다. 당시 박태준은 계성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교회에 다녔고 매일 청라언덕을 지나는 한 여학생을 짝사랑해서 불렀던 노래였는데 이은상이 써 준 가사에 박태준이 곡을 붙여 만들어 완성된 곡이 ‘동무 생각’이다. 청라언덕 위에 언제나 하얀 백합꽃으로 피어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청라버스 앞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학창시절을 추억하느라 상기된 볼이 마치 꽃송이 같다. 지금 쯤 푸른 담쟁이덩굴이 피어있을 청라언덕으로 당장 가봄직도하지만 작은 괴석 위에 산이 있는 풍경에 또 마음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꽃들이 모여 있고 푸른 잎 식물들이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며 궁전을 장식한다. 그 중 하나가 석부작이다. 석부작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동남아 등에서 과거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오던 예술이다. 원래 시작은 돌과 풍란을 주제로 많이 만들지만 만드는이에 따라서 다양한 자연 소재를 가지고 자연과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바위솔 분경도 그 하나인데 바위솔과 와송 그리고 이끼로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바위 절벽과 꼭대기에 우뚝 솟은 돌산 사이로 이끼의 부드러운 질감탓에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마침내 산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가 된다. 소박하지만 마음에 따라서는 거대한 산 하나가 탄생한다. 그 산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때로는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질 것이다.

산 하나가 또 다시 내게 들어왔다. 이웃한 공간에 정원이 보인다. 도시농업정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둥지 모양의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알이다. 세 개가 있는 이유는 뭘까. 잠시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도시농업의 핵심 가치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도시농업은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첫 번째 가치고 녹지공간을 확대하고 도시 열섬현상을 막아주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두 번째 가치고, 마지막으로 도시농업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측면에서 경제 활성화가 아닐까 싶다. 즉 도시농업의 탄생과 그 가치에 대한 의미를 알로 표현한 듯 싶다. 부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희망을 품고 있겠다. 물론 필자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농장의 경계에 심어진 누런 보리 울타리가 정겹다. 그 옆으로 저탄소 시민농업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탄소는 탄소의 발생을 최대한 줄여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농업을 말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한 상징적이고 실천적인 의지를 나타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잠시 눈을 옆으로 돌리니 작은 액자 속에 여러 종류의 세밀한 꽃의 모양을 그려놓은 ‘보태니컬미술’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보태니컬아트란 식물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연출하여 다양한 기법을 통해 세밀하게 표현해 내는 미술의 한 분야라는 점에서 식물의 형태나 색상, 성장 과정이나 씨앗, 뿌리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표현하여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식물일러스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비록 향기는 없지만 꽃을 구성하는 꽃잎과 암술 수술 꽃가루 꽃받침 그리고 꽃대와 탁엽 등 꽃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의 아름다움을 화가의 감성으로 극대화시켜 놓아 그 요소 하나 하나를 바라보면 자연의 섭리가 보이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생활화훼 전시공간을 지나니 중년의 여성들이 꽃바구니 만들기 강좌에 참여하여 꽃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강사의 맑고 청명한 목소리로 설명을 듣는 참여자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예사롭지 않다. 바람에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 표면으로 하얀 햇빛이 반짝이듯 희고 가지런한 손놀림으로 꽃대를 자르고 장식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붙박이 별들이 반짝이는 듯하다. 이곳 궁전의 정원은 시간이 지나면 꽃들은 시들고 아름다움은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꽃들이 남기고간 진한 향기와 위안이라는 선물을 하나씩 받고 가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희생과 땀과 노력으로 여름 햇살 쏟아지는 이곳 궁전의 정원에 핀 꽃들의 향기 속에 행복을 꿈꾸는 너와 내가 또 다시 만나는 그 날을 진정 바라본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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