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자란 독립운동가 후손, 한국 여자 유도 간판 ‘우뚝’
日서 자란 독립운동가 후손, 한국 여자 유도 간판 ‘우뚝’
  • 석지윤
  • 승인 2024.07.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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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올림픽서 銀’ 허미미 인생사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5대손
日 유도선수로 탄탄대로 걷다
조모 “韓 국가대표 되길” 유언
경북체육회 입단 후 ‘태극마크’
유도여자57kg급은메달허미미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을 딴 허미미가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경을 넘나드는 어려움 속에서도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으로 우뚝 선 허미미(21·경상북도체육회)의 인생사가 주목받고 있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면서도 성인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자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다. 2002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를 동경해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 여자 52㎏급 우승, 일본 카뎃유도선수권대회 준우승 등 종주국 일본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허미미의 인생에 변곡점으로 작용한 것은 할머니의 유언이었다. 지난 2021년 작고한 허미미의 조모는 “한국 국가대표로 선수 생활을 하길 바란다”는 유언을 손녀에게 남겼다.

허미미는 그 길로 바로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이듬해부터 태극마크를 달긴 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2021년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크게 유행한 탓에 출입국 절차가 까다로워 한일 양국을 오가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 역시 어린 딸을 걱정해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을 만류하기도 했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은 “당시 한국에 연고가 없었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보니 그때가 허미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허미미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았고 2022년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무대를 옮긴 허미미는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2022년 6월 국제대회 데뷔전인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에도 포르투갈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오다가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은 무려 29년 만.

허미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는 출사표와 함께 이번 대회에 나섰다. 그는 처음으로 참가한 올림힉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대표팀의 유도 부문 첫 메달 획득과 동시에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48㎏급 정보경 이후 무려 8년 만의 유도 메달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석지윤기자 aid1021@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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