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바람 냄새나는 사람
[좋은 시를 찾아서] 바람 냄새나는 사람
  • 승인 2024.07.3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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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춘 시인
이월춘 시인

경화오일장을 거닐었지
삶은 돼지머리 냄새처럼
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고
내동댕이치는 동태 궤짝을 피해
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에 귀를 내주면서

나이 들고 넉살이 늘어도
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
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는 재래시장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보며
고들빼기김치나 부드러운 고사리나물을 담고
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
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

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닐었지
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
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
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지

■약력
▶1986년 무크<지평>과 시집<칠판지우개를 들고>으로 등단▶시집 <기억은 볼 수 없어서 슬프다> 외, 시선집<물굽이에 차를 세우고> ▶문학에세이<모산만필>, 산문집<모산만필 2> 외▶전 진해남중 교장, 현재 경남문학관 관장, 영남문학 주간 ▶홍조근정훈장, 경상남도문화상, 경남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산해원문화상 외

■해설
이 시의 배경은 진해의 경화오일장이다. 날마다 열리는 장이 아닌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그런 장날의 장터가 세밀한 묘사로 그려지고 있다. 시를 읽다가 문득 나를 붙잡는 부분은 수수부꾸미이다. 어릴 적 강원도에서 부모님들은 수수 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간혹 쌀 대신 수수로 만든 음식이 상위에 올라와도 수수 특유의 맛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지금은 그 맛이 그립다. 여하튼 시인이 찾은 경화오일장은 왜? 사는지에 대한 생존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 충분한, 생활의 필요에 따른 여러 가치와 용도를 지닌 것들이 거래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시장의 풍경인바, 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다고 시인은 바람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 가서 수수부꾸미가 먹고 싶고-<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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