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식품 관련학과로 진학
직업으로 연결에는 의문 쌓여
여행 중 한국 미식문화 ‘매료’
△일과 경력의 재발견이 필요한 시점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청년 세대에게 일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때로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보내는 값진 시간조차도 자신의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 행위 정도로 평가 절하하곤 한다. 워라밸을 외치며 5시 55분만 되면 이미 가방을 싸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정도라고 말하는 청년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을 청년들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내에서나 사회 곳곳에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중장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빨리 일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경력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만 행복한 인생 또한 설계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행복과 성취는 일과 관련된 생활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일이 가정과 개인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뚜렷한 통찰력과 목적 없이 새로운 경력을 추구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직업과 직장, 경력의 의미를 혼동하거나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는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 ‘평생직업’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직장은 과거와 달리 개인의 미래에 안정을 보장해 주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조직 내에서 특정 포지션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는 경력이 관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조직 내에서 다른 조직원들로 대체될 수 있는 역할은 현재 자신이 무엇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또한, 이러한 역할에서 만들어진 경력의 가치는 유효기간이 매우 짧다.
따라서 자신의 명확한 비전하에서 장기적 관점의 계획이 필요하며, 이 계획은 사회문화와 시장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지속적으로 조정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속되어 일하게 되는 곳이 ‘직장’이며, 자신의 전문성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경력 관리’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관계 속에서 찾아낸 자신의 일과 관련된 정체성이 ‘직업’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저마다의 스타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이들에게 우려를 표하면서도 존경을 보낸다. 경주에서 만난 ‘도시에서 온 총각’ 김동영 대표(33)는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50%, 걱정과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50%라고 말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직장과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제 일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종종 있어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과의 조우
어린 시절부터 식재료와 음식에 진심이었던 김동영 대표는 식재료 고유의 맛과 음식의 역사, 조리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자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공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식품 관련학과로 진학했다. 다음 단계는 공식에 따라 식품 관련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10대 때와 마찬가지로 20대에도 식재료와 음식에 진심이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연결시키는 사회적 방식에 대해서는 의문이 쌓여갔다고 회상했다.
“영어 점수를 올리고 자격증을 따며 취업 준비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저는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와 배낭여행(워킹홀리데이 이후 캐나다, 미국, 멕시코, 쿠바 배낭여행/6개월)을 떠났습니다. 여행 과정에서 한국의 미식문화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특별한지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여행 중에 또 다른 배낭여행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전국의 농가를 돌며 일손을 돕고, 여행지에서 만난 숨은 집밥 고수들의 음식을 먹으며 제 진로를 구체화해 보기로 했던 거죠.”
2018년, 스물여덟 살이었던 김동영 대표는 자신을 찾기 위해 두 번째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우리나라 농촌 사회의 문제들을 그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해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식재료와 음식문화에 대한 탐구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확장시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배낭여행 동안의 하루하루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정확히 151일 동안 전국 37개 농가에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해결했어요. 그러면서 배낭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통해 미식문화를 포함한 우리 고유의 문화가 계승되기 위해서는 빈집 문제, 인력 문제 등 현재의 농촌사회 문제들이 어느 정도는 해결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됐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 몸은 고됐지만, 자고 일어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이 쌓여갔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귀농·귀촌 청년 위한 유튜브 개설
딸기 농가 인터뷰 200만 조회수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다는 확신
농산물 홍보로 농촌 활성화 목표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김동영 대표는 여느 청년들처럼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 국내 여행을 통해 농촌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를 위해 수도권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도권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농산물 유통업체에 취업을 결심하게 됐고, 관련 회사에 입사 후 경주 지역으로 근무지를 신청했다.
김 대표에게 경주는 정말 특별한 도시였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였고, 농산어촌이 어우러져 있어 다양한 미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발령지인 경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농산물 유통구조와 메커니즘을 알게 되었고, 월급을 통한 심리적 안정감도 경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고향을 떠나 시골에서 생활하는 이유와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침에 눈 떠서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에 스며듦을 경험했습니다. 월급에도 익숙해졌던 것 같고요. 그건 제가 꿈꿔온 삶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회사를 나왔죠. 짧은 시간 동안 회사와 정이 많이 든 상태였기 때문에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 또한 쉽지 않았어요.”
이후 김 대표는 151일간의 배낭여행 기록을 엮어 「나는 왜 시골을 돌아다녔는가?」를 출판했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잇는 일’을 하자는 목표하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국의 농가를 돌아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리고 농가의 판로를 확장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관련 콘텐츠도 만들고 온라인 판매 채널도 개설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생각처럼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정말 성실하게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다시 봐도 열심히는 만들었지만,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장은 계속됐던 것 같아요.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 업로드 날짜에 따라 내용 구성이나 편집 기술에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마치 맨땅에 헤딩하듯 1년 정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역의 딸기 농가를 인터뷰한 영상이 며칠 만에 조회 수 20만 회를 기록했죠. 그 영상은 현재 조회수가 200만 회 이상이며, 그날의 사건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가도 된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현재 김 대표는 ‘도시에서 온 총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농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안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나가고 있다. 특히 오는 10~11월 중, 유튜브로 업로드 예정인 ‘농촌 Solo(가제)’는 도시에 비해 이성과의 만남에 제약이 많은 농촌 청년들의 현실과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비혼 또는 미혼 등의 사회적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콘텐츠는 촬영지인 경주를 알리고, 지역 농산물 및 제품의 홍보를 통해 농촌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콘셉트 자체는 학창 시절의 여름방학이에요. 남녀 참가자 8명이 출연 예정인데,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을 것 같아요. 지역 농·특산물의 가치, 현지의 미식 문화, 농촌 사회의 청년 문제 등 예상되는 내용 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김동영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공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경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김 대표의 사례는 일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행복을 찾아 헤매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며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미나(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