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오스트리아 궁전 근처
넓은 잔디에 메리골드 인상적
질경이·민들레·잡초도 자라
꾸밈보다 자연 그대로 존중
◇궁전의 조경 이야기
지난 7월 하순부터 이달 초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두 나라 궁전의 정원들과 숲을 보는 기회를 가졌다. 여러 해 전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던 때가 함께 떠올랐다. 당시 엄청난 크기의 궁전과 궁전 앞 조경을 보고는 압도되었다. 루이 16세는 그의 ‘대단함’을 금으로 포장된(?) 궁전의 방들과 엄청난 크키의 정원으로 과시하였다.
이번에 방문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궁전의 조경은 매우 단순하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와 비교가 되면서 여러가지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궁전들에 심어진 식물들의 단순함에 놀랐다. 매우 넓은 잔디에 메리골드와 보라색의 꽃들이 심어져 있는 곳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넓은 잔디들, 메리골드와 한국에서 자주 보는 보라색꽃, 장미 등 많지 않은 식물들로 궁전을 꾸며놓았다.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매우 실용적이었다. 나무들 간의 간격은 약 8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심어져 있어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었다.
모차르트 동상 앞 작은 정원
길가에 흔한 보라색 꽃 심어
높은 음자리표 모양 표현
충분히 예쁘면서도 실용적
모차르트 동상 앞의 정원에는 우리나라의 길에서 흔히 보이는 보라색 꽃의 키 작은 식물로 높은음자리표 모양을 만들어 모차르트가 음악가임을 나타내었다. 이 또한 적은 비용으로 이쁘면서도 예술가임을 잘 표현했으니 실용적이었다. 브라암스의 동상 부근도 한국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들과 잡초로 보이는 식물들이 식재돼 있었다. 동상은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서 그런지 먼지로 인해 시커먼 색이었다. 이 곳은 청소도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침 식사 후에 우연히, 그러나 매우 놀랍고도 반갑게 보게 된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 슈타이너 박사의 얼굴상이 조각된 공원은 화려하지 않으나 다양한 식물들로 꾸며진 도심공원이었다. 슈타이너 박사의 얼굴 조각상 앞의 계단은 누군가가 아침부터 깨끗하게 물청소를 하여, 그분이 존경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오스트리아 궁전 근처에는 놀랍게도 질경이, 민들레, 수크렁과 이름 모를 잡초가 심어져 있어 자연친화적으로 관리하는 정성을 볼 수 있었다. 인공적인 꾸밈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존중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정원들이 방송에 많이 소개된다. 수국이나 장미 등 하나의 주제 식물로 이루어진 정원들과 식물원도 있는데 비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돈으로 치장되고 너무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심겨진 정원들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 곳도 있다. 모두 엄청난 노력과 국민들의 많은 세금이 투입되는 곳이다. 화려함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특색있는 정원이 필요할 것 같다. 잡초정원, 전통씨앗 정원, 나물정원, 자연 소리 정원 등의 다양한 주제 정원, 산업이나 체험 등과 연결되는 정원도 필요할 것 같다. 지나치지 않은가 하고 염려되는 식물원들이 없기를 기대한다.
◇시공 뛰어넘는 ‘아이들의 놀이 그림’
화가 부루겔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나타낸 바벨탑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 그가 살던 16세기의 어린이 230명이 오늘날도 하는 팽이치기, 목말 타기, 공굴리기, 나무 위에 매달리기 등을 하는 모습과 일하는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은 바벨탑 그림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많이 보지 못해서 인지 하나의 그림에 어린이들 230명이 83개의 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아이들 수 백 명이 80개 이상의 놀이를 하는 그림을 보고 매우 놀랍고 즐거웠다. 네덜란드의 미술가 피터 부루겔은 그리 크지 않는 그림에 굴렁쇠굴리기, 인형놀이, 아이 놀려먹기, 팽이 치는 아이들, 목말타기 놀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아이들 등 230명의 아이들이 하는 83가지 놀이를 담아 표현했다.
그림이 그려진 때가 1500년대라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의 그림들은 대부분이 기독교 관련이거나 왕 귀족 중심의 내용이었다.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상은 표현한 그림은 후대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선조들의 그림에서도 일반 민중의 삶과 생활풍속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주로 나타난다.
부루겔의 아버지는 겨울의 여우 사냥에서 돌아오는 눈 속의 사냥꾼을 그린 겨울 그림으로 유명하다. 뭇 생명들이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는 봄날이 아닌 삭막한 겨울을 그린 유럽 최초의 그림이라고 한다. 83개의 그림에 내가 하거나 요즘 하는 놀이 들을 합하면 100개의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그림에 담긴 내용을 체험교육으로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부루겔의 그림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7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과 그 아이의 엄마로 생각되는 젊은 여자가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다가가 아이들 놀이 그림을 이야기하니 자기는 프랑스에서 왔다며, 자기도 어린 시절 그런 놀이를 하면서 자랐다고 웃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 방문객과의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같은 놀이를 했다는,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감정공유와 함께 웃은 순간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어린이들이 지금 하는 놀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무엇을 넣어야 할까? 컴퓨터 게임, 숲속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하는 놀이들, 유치원에서 하는 놀이들 등을 하나의 그림에 나타낸다면 훗날 오늘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늘날을 표현하는 그림에 담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유용한 여행이었다.
◇텃밭 박물관 이야기
독일 밤베르크 시내에서 역으로 가다가 가기 우연히 1900년대 농부의 집과 텃밭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들어갔다. 입구에서 5유로의 입장료를 준 뒤 작은 건물을 지나 야외로 나가니 텃밭이 있었다. 텃밭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상추, 옥수수, 호박, 박하, 바질, 무화과는 물론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등의 꽃들과 나무로 만들어진 긴 의자 2개가 있었다.
텃밭에서 나와 집 주위를 보니 풀들을 잘라 거름 만드는 곳, 우물, 농기구들이 있었고, 집의 1층에는 방에 침대와 인형, 할아버지 방엔 침대와 종교 관련 유물들이 보였다. 부엌에는 음식만드는 기구들이, 마구간에는 작은 영상물과 말에 사용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락 같은 2층을 올라가 씨앗들을 작은 유리통 안에 담아 전시되어 있었고, 씨앗들이 전파된 그림들과 지도들과 설명서들이 있었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서 팜플렛을 2장 받았다. 나중에 호텔에 와서 읽어보니 밤베르크지역의 씨앗들을 보존하고 도시농업협회에서 같이 노력하고 있는 박물관이라 적혀있었다.
이곳 방문은 열정이 있으면 작은 박물관 설립이 가능하다는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내가 가진 토기류들, 외조부의 1950년대 농사 책과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3곳 마을주민들의 진정서, 약간의 농기구들과 어구들 그리고 우포늪 관련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그 작은 박물관을 소개하며 작은 박물관을 하고 싶다고 하니, 지인이 하는 말 “매여있어야 하기에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자신이 가진 자료와 유산들을 귀중히 하여 독특한 작은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인생 2막에 관한 어느 책 내용이 생각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물건들을 오래 모으고, 나이 들면 도시근교에 200평 정도의 땅을 마련하여 작은 시설물을 짖고 교육하고 체험하며 약간의 부수입을 올리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한 박물관 운영자의 글이다. 좋아하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오래 모으면 가능할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과 준비가 필요하다. 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성, 즐거운 체험제공, 열정,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본다.
노용호<한국생태관광연구원장·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