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찾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낯선 풍경 속에 꽃이 눈에 들어왔다 부겐베리아(부겐빌레아)가 만드는 골목길 꽃 터널도 있었고 가로수 밑에 지피식물로 심은 란타나도 보였다. 새벽꽃시장에는 카랑고에, 서피니아, 페츄니아 등 모종을 팔고 있었고 능소화가 담벼락을 넘고 있는 집도 있었다. 베이지색 담벼락을 배경으로 핀 무궁화가 예쁘기도 하고 이국에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주변 지인에게 무궁화 사진을 보냈다.
꽃을 본 사람 중에는 “어 무궁화 아니에요? 외국에도 있어요?”
“네, 한국에만 있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 왜 그렇게 자주 무궁화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무궁화 하면 한국 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궁화는 우리나라에만 피는 꽃이 아니고 자생지도 한국이 아니다. 무궁화처럼 여름에 피는 원추리를 한국 사람이라면 다 떠올릴 것같다. 뉴카이로 로터리 화단에 노랑원추리가 무리를 지어 있다고 상상이 될는지 모르겠다. 노란 바람개비 같은 원추리가 너무나 신기해서 차창 밖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한국과 비교한다. 파도가 들려주는 자다르 바다 오르간의 소리를 들으면서 제주 대평리 포구에 이런 오르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메테오라 일몰 투어처럼 노을 질 때 지리산이 보이는 황매산 중턱에 사람을 실어나르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면 ‘나같은 사람은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시설이나 여행상품만 아니라 한국의 꽃과 닮은 것 같지만 약간 다른 외국의 꽃들을 비교도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살펴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산에 흔히 보이는 사이질빵을 닮은 지중해 해변의 클레마스를 보며 ‘이 꽃은 한국 꽃집의 클레마스보다 작네’라고 비교해보기도 했고 루즈를 바른 입술 모양으로 자그레브 담벼락에 걸려있는 능소화를 한국의 능소화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풍로초를 닮은 제라늄 상귀네움을 플리트비체 숲길에서 만났을 때 앙증맞은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생긴 모양은 조금 다를지라도 야생화가 주는 기쁨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풍로초와 제라늄이 닮았다니 닮은 모양이 상상이 안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제라늄의 원래 이름은 펠라고늄(Pelargonium)이다. 한국 야생화인 쥐손이풀이나 이질풀이 제라늄이다. 국가표준식물검색사이트에 제라늄이라고 치면 제라늄이라는 한국 국명 앞에 펠라고늄(Pelargonium)이라는 학명이 붙어 있다. 이처럼 꽃을 알아가는 과정을 나태주 시인은 풀꽃 2로 표현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되는 것”이라는 시처럼 꽃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휴가의 테마인 자연을 보러 자그레브 대학 식물원을 찾았다. 이 식물원(botanical garden)은 오래된 교목이 길가에 나란히 서 있어서 수목원 같은 느낌도 있다. 이곳은 관목, 수목과 지중해 식물, 고산지대 식물, 늪지대 식물, 약용식물, 습지식물, 온실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무려 125년이나 지난 이 식물원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연못에 핀 연꽃, 까치수염과 고추나물이었다.
한국 야생화들이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발 달린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식물을 보러 식물원에 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땅에서 나를 맞이하는 이 대단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나에게 자그레브가 낯설듯 낯선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에 다문화 학생이 30% 이상인 학교가 350곳이 넘는다고 한다. 시골 버스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볼 수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사마르처럼 히잡을 두른 무슬림을 종종 마주친다. 몇 해 전 여름 내가 카이로에서 원추리를 보며 한국을 그리워했듯이 사마르는 서울에 핀 원추리를 보며 카이로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아프지 말고 한국에서 삶이 꽃이 되는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손병철 <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꽃을 본 사람 중에는 “어 무궁화 아니에요? 외국에도 있어요?”
“네, 한국에만 있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 왜 그렇게 자주 무궁화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무궁화 하면 한국 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궁화는 우리나라에만 피는 꽃이 아니고 자생지도 한국이 아니다. 무궁화처럼 여름에 피는 원추리를 한국 사람이라면 다 떠올릴 것같다. 뉴카이로 로터리 화단에 노랑원추리가 무리를 지어 있다고 상상이 될는지 모르겠다. 노란 바람개비 같은 원추리가 너무나 신기해서 차창 밖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에 가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한국과 비교한다. 파도가 들려주는 자다르 바다 오르간의 소리를 들으면서 제주 대평리 포구에 이런 오르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메테오라 일몰 투어처럼 노을 질 때 지리산이 보이는 황매산 중턱에 사람을 실어나르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면 ‘나같은 사람은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시설이나 여행상품만 아니라 한국의 꽃과 닮은 것 같지만 약간 다른 외국의 꽃들을 비교도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살펴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산에 흔히 보이는 사이질빵을 닮은 지중해 해변의 클레마스를 보며 ‘이 꽃은 한국 꽃집의 클레마스보다 작네’라고 비교해보기도 했고 루즈를 바른 입술 모양으로 자그레브 담벼락에 걸려있는 능소화를 한국의 능소화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풍로초를 닮은 제라늄 상귀네움을 플리트비체 숲길에서 만났을 때 앙증맞은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생긴 모양은 조금 다를지라도 야생화가 주는 기쁨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풍로초와 제라늄이 닮았다니 닮은 모양이 상상이 안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제라늄의 원래 이름은 펠라고늄(Pelargonium)이다. 한국 야생화인 쥐손이풀이나 이질풀이 제라늄이다. 국가표준식물검색사이트에 제라늄이라고 치면 제라늄이라는 한국 국명 앞에 펠라고늄(Pelargonium)이라는 학명이 붙어 있다. 이처럼 꽃을 알아가는 과정을 나태주 시인은 풀꽃 2로 표현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되는 것”이라는 시처럼 꽃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휴가의 테마인 자연을 보러 자그레브 대학 식물원을 찾았다. 이 식물원(botanical garden)은 오래된 교목이 길가에 나란히 서 있어서 수목원 같은 느낌도 있다. 이곳은 관목, 수목과 지중해 식물, 고산지대 식물, 늪지대 식물, 약용식물, 습지식물, 온실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무려 125년이나 지난 이 식물원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연못에 핀 연꽃, 까치수염과 고추나물이었다.
한국 야생화들이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발 달린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식물을 보러 식물원에 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땅에서 나를 맞이하는 이 대단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나에게 자그레브가 낯설듯 낯선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에 다문화 학생이 30% 이상인 학교가 350곳이 넘는다고 한다. 시골 버스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볼 수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사마르처럼 히잡을 두른 무슬림을 종종 마주친다. 몇 해 전 여름 내가 카이로에서 원추리를 보며 한국을 그리워했듯이 사마르는 서울에 핀 원추리를 보며 카이로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아프지 말고 한국에서 삶이 꽃이 되는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손병철 <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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